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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승차거부 운동 불붙여 흑백차별 철폐-로자 파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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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승차거부 운동 불붙여 흑백차별 철폐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가 24일(현지시각)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자택에서 92살을 일기로 숨졌다.그가 1950~60년대 미국 인권운동의 대표적 인물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42살 때인 55년에 찾아왔다. 이해 12월1일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흑백 인종별로 버스 좌석이 구분돼 있던 차별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버스를 탄 뒤 자리 양보를 거부하고 앞자리에 앉았다. 당시 미국 남부지역의 법률에는 흑인들은 버스 앞자리를 백인들에게 양보하도록 돼 있었다.
백인들은 저항하는 그를 버스 밖으로 내던졌으나, 이는 곧바로 흑인들의 버스 승차거부 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 또 이는 그때까지도 뿌리깊게 박혀 있던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을 없애는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몽고메리에서 버스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혐의로 체포된 것은 파크스가 처음이 아니지만 그는 법에 도전함으로써 사회를 바꿔 나갔다. 파크스는 당국에 체포돼 10달러의 벌금과 4달러의 법원 비용을 물었다. 이를 계기로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이끄는 흑인들의 조직적 버스 승차거부 운동이 일었다. 버스 승차거부 운동은 381일 동안이나 지속됐다. 당시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킹 목사는 나중에 이 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흑인과 백인 학교를 분리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연방 대법원 판결 1년 뒤에 벌어진 이 사건은 현대 민권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이 운동은 64년 절정에 이르러 공공시설의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연방 민권법을 탄생시켰다.
‘앞자리는 백인 우선’ 악법 항거
55년 킹 목사 등 381일간 거부
“자유는 모든 인류 위한 것”
파크스는 당시 앨라배마주에서 직장을 잃고 수많은 살해 협박에 시달리다 57년 남편과 함께 디트로이트로 옮겨가 의원보좌관으로 88년까지 일했다. 파크스는 90년대 후반 이후 건강이 악화되며 언론과 접촉을 중단하고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95년 “나는 항상 자유를 원했으며 그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며 “자유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96년 그는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훈장을 받았다.
파크스는 숨진 남편과의 사이에 자녀가 없었으며, 마지막까지 그의 주변을 지킨 사람들은 조카 13명이었다.
워싱턴 디트로이트/AFP 로이터 연합, 사진 로이터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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