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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반미시위 제4차 미주정상회의가 열린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 허미지티 호텔 주위에서 4일 얼굴을 가린 청년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반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아르헨티나 축구영웅 마라도나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선두로 1만여명이 모여 반미 구호를 외쳤다. 마르델플라타/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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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도 ‘자유무역지대’ 끝내 합의 실패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5개국 ‘신자유주의’ 반발 회의기간 내내 남미 전역서 반미시위
제4차 미주기구(OAS) 정상회의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 재개에 합의하지 못한 채 5일 아르헨티나 휴양지 마르델플라타에서 막을 내렸다. 미주기구 소속 34개국은 이날 폐막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과 관련한 합의 도출을 시도했으나,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미국은 이번 회의에서 중남미에 불고 있는 반미 정서를 목도했다. 미주자유무역지대 창설에 반대하는 나라들은 남미의 경제 위기가 1990년대 미국의 지원 아래 추진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탓이라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회의장 주변에선 격렬한 반미시위가 잇따랐다.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 어디로=이날 채택된 선언문은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을 내년에 재개하자는 의견과 다음달 홍콩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 회의 결과를 지켜보고 결정하자는 의견을 모두 담았다. 미주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지지하는 미국, 멕시코 등 29개국과 이에 반대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5개국이 맞선 결과다. 이로써 94년 첫 정상회의에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제안했던 미주자유무역기구 창설 논의는 올 1월 협상 완료 시한을 넘기고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미주자유무역기구에 반대하는 나라들은 선언문 부가조항에서 “농업보조금 및 왜곡된 무역관행이 배제된 공정한 자유무역 협정의 조건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주자유무역지대 창설 논의가 이처럼 좌초한 데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반발과 각국의 복잡한 사정이 깔려 있다.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좌파 정권들은 90년대 미국이 수출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의해 부채가 다시 늘고 빈부격차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농업 수출국인 브라질은 미국의 농업보조금을 문제삼았고, 아르헨티나는 700억달러의 대미 수출 보장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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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정상회의 제4차 미주정상회의에 참석한 34개국 정상들이 4일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관심을 모았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아랫줄 오른쪽에서 4번째)과 반미의 선봉장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윗줄 왼쪽에서 4번째)의 맞대결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르델플라타/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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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미국은 미주자유무역지대 창설 논의의 불씨를 살렸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스티븐 헤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는 미주자유무역지대를 매장하려는 정상회의에서 빠져나왔다”며 “실질적인 진전을 봤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지지한 멕시코 비센테 폭스 대통령은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지지하는 나라들로만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반미 시위=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개최국인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브라질,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에서 반미시위가 잇따랐다. 특히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과 아르헨티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 등이 참석한 반미집회에 나가 “미주자유무역지대를 땅에 묻기 위해 삽을 가져왔다”고 호언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의 미주자유무역지대 대신에 빈곤 퇴치를 위한 중남미 지역의 통합을 목적으로 한 ‘볼리바르식 대안’을 주장했다. 그는 “이 대안은 엘리트가 아니라 밑으로부터 세워져야 한다”며 국제시세보다 40% 싸게 카리브해 국가에 석유를 공급하는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들었다. 그러나 차베스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맞대결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밤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 도착해 공식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브라질리아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선 수백명 단위의 반미 시위가 잇따랐다. 일부 지역에선 부시 대통령의 화형식을 열기도 했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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