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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6 19:26 수정 : 2005.11.07 09:54

쿠바 아바나시 베다도 지역에 있는 메르카도 디에시누에베 자유시장에서 지난달 28일 상인들이 농장에서 생산된 다양한 채소와 과일들을 늘어놓고 팔고 있다. 아바나/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피스보트 세계를 가다 / 아바나 도심속 유기농장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미국의 봉쇄정책 강화로 지난 90년대 위기에 빠졌던 쿠바가 ‘새로운 혁명’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도심 속 유기농장이 인구의 80%에 이르는 도시민의 먹거리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지난 10여년 사이 농업 생산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지난달 28일 오후 1시께 쿠바의 수도 하바나 시내 베다도 지역에 있는 ‘메르카도 디에시누에베’ 자유시장을 찾았다. 주말을 앞둔 탓인지 이른 시간임에도 비좁은 시장 안은 인파로 북적댔다. 시장 관리인 율리안 산체즈 차콘(28)은 “채소와 과일, 육류 등을 두루 갖춘 80여 소형 점포가 있다”며 “하루 평균 700~800명이 이곳에서 장을 본다”고 말했다.

이곳은 농민들에게 잉여농산물 판매가 허용된 직후인 지난 1994년 10월 초 문을 열었다. 판매되는 모든 농산물은 하바나 시내의 유기농장에서 재배된 것이다. 쿠바 전체 인구의 20%에 이르는 약 220만 하바나 시민들은 유기농장을 통해 농산물을 자급자족하고 있다.

경제위기 쫓겨 친환경 농법 눈떠

쿠바가 유기농장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1990년대 초반 닥친 경제위기였다. 대외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해 온 옛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쿠바 경제는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특히 식량의 대부분을 ‘사회주의 형제국’에 의지한 채 사탕수수, 커피, 담배 등 수출용 작물 재배에 집중해 온 터라,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다. 카스트로 정권은 즉각 ‘평화시기 특별기간’을 선포하고 농업 분야 개혁안을 내놨다.

개혁은 생산과 분배 양쪽에서 이뤄졌다. 우선 생산 부문에선 외국산 화학비료와 농약, 농기계에 의존해 온 기존 농법이 불가능해졌다.


1989년과 비교할 때 1992년의 원유 수입량은 53% 수준으로, 화학비료와 농약 수입량은 각각 77%와 62.5% 가량으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퇴비와 유기비료를 만들어냈다. 독성이 없는 유기농약을 개발하고, 특정 해충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서로 어울리는 두 개의 작물을 혼합 재배하기 시작했다.

집단농장 체제도 자발적 영농조합 체제로 바꿨다. 도시를 유기농의 거점으로 탈바꿈시켜 갔다. 로사 갈레고 국립열대농업연구소(INIFAT) 선임연구원은 “도시 농업의 기본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참여해 가능한 한 넓은 땅에서 농산물을 생산해 내는 것”이라며 “농민들에게 생산목표를 정해주고, 잉여 생산물은 자유롭게 팔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말했다.

자유거래 길터 식량자급 틀잡아

29일 오후 하바나 외곽의 ‘제25 유기농장(오르가노포니코)’을 찾았다. 유기비료와 퇴비를 듬뿍 머금고 검은색에 가까워진 기름진 흙에선 해충 박멸에 ‘찰떡궁합’이라는 토마토와 양상추가 나란히 자라고 있었다. 농장 지배인 파블로 산스(52)는 “한 가지 작물만 재배하면 특정 해충에 전체 농장이 한꺼번에 노출되기 쉽다”며 “화학비료와 농약은 아예 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유기물을 활용해 지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는 정부 소유지만, 생산량의 85%는 30명의 조합원들이 고루 나눈다. 정부는 농산물이 학교 병원 복지시설 등 이른바 ‘사회시장’에 제대로 공급될 수 있도록 판로를 정해주고 있다. 농장 곁에 마련된 매장에선 하루 200~300명이 갓 수확한 야채와 과일을 구입하고 있다. 산스는 “지난해 조합원 평균 월 수입은 1200페소(약 126만원)였다”며 “이는 의사 평균 월급 2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시내 플라야 지역에서 소규모 집중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올가 고메즈(46)는 “1994년 5가구를 모아 영농조합을 구성한 뒤 장비와 기술 지원을 받아 매년 수확량을 10~20% 이상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고메즈의 농장 맞은편 땅에서 군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땅 고르기에 한창이다. 인근 군 부대에서도 자체 유기농장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절박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도시 유기농 실험이 쿠바 전역을 초록으로 물들여가고 있다. 아바나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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