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09 15:27
수정 : 2017.01.09 20:43
‘트럼프 성토장’ 된 골든글로브 수상식장
“권력자의 장애인 조롱에 가슴 무너져…
권력이 약자 괴롭힘에 쓰이면 모두 지는 것”
“무너진 가슴을 예술로 승화하라” 조언 새겨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메릴 스트립(67)이 8일(현지시각) 골든 글로브상의 최고 영예로 꼽히는 평생공로상을 받으면서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소수자 멸시 태도를 비판하는 뼈 있는 발언도 했다.
스트립은 이날 캘리포니아주 베벌리 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인 ‘세실 B. 드밀’상을 받았다고
(에이피)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생애 통산 9번째 골든 글로브 수상이기도 했다.
스트립은 수상 소감 연설에서 “감사하다. 지금 이곳(시상식장)에 모인 우리 모두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비방을 받고 있는 분야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라. 바로 할리우드(영화인들), 외국인들, 그리고 언론인들”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우리는 누구이며 할리우드는 무엇인가? 바로 다양한 사람들의 집단”이라며 “할리우드는 아웃사이더, 외국인들과 함께 나아가고 있다. 만일 그들을 내쫓는다면, 여러분은 예술이 아닌 풋볼이나 격투기 말고는 볼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뉴욕 타임스> 등은 메릴 스트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당선자가 <뉴욕 타임스>의 지체장애인 기자를 공개적으로 조롱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사람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채 털어놓은 것”에도 주목했다. 스트립은 연설에서 “지난해 내가 깜짝 놀란 순간이 있다”며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자리를 추구하는 남성(트럼프)이 특권과 권력이 없다고 본 장애인 기자를 흉내 내는 걸 봤을 때 가슴이 무너졌고 지금도 고개를 들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중이던 2015년 11월, 선천성 관절 만곡증을 앓고 있는 세르지 코발레스키 <뉴욕 타임스> 기자 앞에서 오른쪽 팔을 치켜든 채 손목이 흔들리는 시늉을 하며 “이 불쌍한 사람(코발레스키 기자)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 한다”고 말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코발레스키 기자는 “2011년 9·11 테러 때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되자 수천명의 무슬림이 환호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보도를 했었다.
스트립은 수상 연설에서 “무례는 무례를 부르고,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권력이 타자를 괴롭히는 데 쓰인다면 우리 모두가 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레아 공주 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뒤 지난달 타계한 여배우 캐리 피셔를 추모하는 말로 수상 소감을 끝맺었다. “제 친구이자 세상을 뜬 레아 공주가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너진 마음을 거두고, 그걸 예술로 승화시켜요’라고.”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