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13 15:20
수정 : 2017.11.1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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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제1 연방순회항소법원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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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래 가장 빠른 속도로 연방판사직 물갈이
상원 표결 변경, 빈자리 많아 ‘장악’ 유리
정치색, 극우성향 강한 인사들 줄줄이 입성
종신 강경보수 판사들로 미국사회 규율 의도
미국변호사협회의 반대 의견은 간단히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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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제1 연방순회항소법원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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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적 사법부 물갈이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연방법원 법관 지명에 자신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은 드물지 않지만, 이번 물갈이는 폭과 내용 모두 사법부의 성격을 크게 뒤흔들 정도다.
<뉴욕 타임스>는 상원 법사위원회가 지난 9일 브렛 탤리 법무부 부차관보와 그레고리 캣사스 백악관 부법률고문의 연방항소법원 판사 인준안을 통과시키면서 사법부 개편 속도가 주목을 받는다고 11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뒤 종신직인 연방항소법원 판사 8명을 임명했는데,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이후 50여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다.
지명자들 면면도 정치와 사회의 양극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탤리는 소셜미디어에서 힐러리 로댐(Rodham)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힐러리 썩은(Rotten) 클린턴”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정치색이 강하다. 2013년에는 코네티컷주 초등학교 총기난사로 20명이 희생된 지 한 달 만에 미국총기협회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글로 물의를 빚었다. 낙태를 노예제도와 비유한 존 부시, 특정 범죄자들에 대한 전기 충격 신체형을 주장한 스테파노스 비바스도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됐다.
극우적이고 경륜도 부족한 이들이 법원을 채우는 것에 대해 법조계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미국변호사협회는 올해 36살인 탤리 후보의 경우 한 번도 재판을 해보지 않아 자격이 없다며 심의위원 만장일치로 임명에 반대했다. 1989년 이래 이 협회가 만장일치로 반대 의견을 낸 대상은 세 명인데, 두 명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이들이다. 이 협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연방법원 판사 4명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재임 1953~61년) 이래 미국 대통령들은 이 협회의 의견을 주요하게 참고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이어 이를 무시하고 있다.
‘극우 판사’ 앉히기가 심상치 않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량 물갈이 수단을 지녔기 때문이다. 상원은 100명 중 60명 이상이 참여해야 연방법원 판사 인준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막을 수 있도록 한 것을 2013년에 단순 과반 찬성으로 바꿨다. 이듬해 상원 다수당이 된 공화당은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연방항소법원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막았다. 그 후 생긴 공석까지 트럼프 대통령 몫으로 남았다. 또 연방항소법원 판사 150명 중 65살 이상이어서 급료는 같아도 업무 부담은 적은 비상근으로 전환할 자격을 갖춘 이들이 44%나 된다. 닉슨 전 대통령 이래 이 비율은 쭉 10~20%대였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그만큼 ‘자기 사람’을 심을 기회가 넓다.
<뉴욕 타임스>는 연방대법원의 연간 처리 사건이 80여건인 데 비해 연방항소법원은 6만여건의 최종심 역할을 한다며, 이런 식의 사법부 개편은 미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몇주 전 도널드 맥갠 백악관 법률고문이 행정부에 참여할 법조인들을 모아놓고 젊고 매우 보수적인 판사들로 연방항소법원을 ‘접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전했다. 수십 년간 법원에 둥지를 틀 강경 보수주의자들로 사회를 규율하겠다는 의도가 착착 실행되는 셈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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