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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크 전 미 법무장관
5일부터 시작된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과 측근들에 대한 재판에서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은 램지 클라크(77) 전 미국 법무장관이다. 미국의 가장 저명한 법률가중 한사람인 그는 “모든 인간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들도 똑같은 권리가 있다”는 신념으로 후세인 변호인단에 새로 합류했다. 5일 바그다드 특별법정에서 열린 세번째 재판에서 그는 판사에게 “이번 재판의 공정성에 대해 말할 시간을 5분만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했고, 결국 변호인단 전체가 집단 퇴정하는 ‘소동’ 끝에 발언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이라크는 내가 사랑하는 국가이며, 매우 위험한 시기에 처해있다”며 “대규모 외국군에 점령됐고 형제들끼리도 서로를 죽이고 있다. 이 재판은 이라크를 분열시키고나 치유할 중요한 사건이지만 지금까지는 이라크인들을 분열시켜 왔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타임스> 6일치와 인터뷰에서 “히틀러가 살아 있다면, 나는 그가 공정한 재판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라며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진리는 왜곡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미 대법원 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클라크는 존슨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역임했고,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등을 바꾸어 놓은 법안들을 마련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후 40년 동안의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다. 그가 변론을 맡았던 인물들의 리스트는 ‘충격’적이다. 미국과 리비아의 적대관계가 심각했던 시절 리비아의 무암마르 가다피 국가원수를 변호했고, 유고슬라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라이베리아 내전의 찰스 테일러 등도 변호했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파사건 혐의로 종신형을 살고 있는 셰이크 오마르 압델 라흐만도 그의 ‘고객’이었다. 70년대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다. 올해초 미국의 각계 저명인사 9천여명이 반전을 주창하며 <뉴욕타임스>를 통해 발표한 반 조지 부시 대통령 선언에도 동참했다. 그가 전쟁반대를 외치는 평화주의자로 변신한 것은 법무장관 재임 중 지켜본 베트남전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클라크는 법조인으로서 80년대 이후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하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는 91년 걸프전 당시 민간시설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 의도적으로 자행됐다는 의혹을 제기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같은해 국제행동센터(IAC)란 이름의 반전평화운동 단체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후세인과 클라크는 1991년 1차 걸프전 기간 동안 바그다드에서 처음 만났으며, 클라크는 1990년대에 4번 이상 이라크를 방문해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이라크의 현실을 고발하고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를 비판했다. 그는 이 모든 활동들은 돈과도 무관하다. 그는 “한푼도 받지 않고 후세인 변론에 참여했다”며 이전의 ‘고객’들로부터도 대부분 한푼의 수임료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후세인 변론에 참여하면서 그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 바그다드까지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이동하는 비용만 변호인단 기금에서 받고 있으며, 나머지 모든 비용은 스스로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클라크는 찟겨진 이라크 사회의 상처가 아물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재판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후세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다면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이라크인들의 감정은 격악돼 있으며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태다. 이번 재판이 다른 형태의 ‘전쟁’으로 인식된다면 사람들은 깊이 분노할 것이다. 많은 이라크인들은 ‘당신들은 ‘정적’인 한 사람을 파괴하기 위해 정의를 가장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번 재판의 주제가 된, 후세인 통치시기 이라크 비밀경찰의 두자일 주민 학살 사건에 대해 그는 당시는 이란-이라크 전쟁 초기로 이 마을을 방문한 후세인이 암살을 모면한 뒤, 이란의 지원을 받은 심각한 사건이라는 가정 때문에 “비밀경찰이 지나친 대응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특이한 변론 이력에 대해 “편견에 맞서 싸우고자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흑백과 선악 이분법으로만 보려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에 맞서려 했다.” <한겨레> 국제부 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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