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표현 자제하는 지혜 필요"
버시바우 "북 변할 경우 상응조치 준비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공개석상에서 "북한은 범죄정권(criminal regime)"이라고 거론해 파문이 예상된다.
버시바우 대사는 특히 돈세탁과 위폐 제조 등에 따른 대북 금융제재는 정치적인 제스처로서 풀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혀, 향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실마리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는 7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연사로 나와 돈세탁과 위폐 사건 등의 북한 이슈에 대한 미 정부의 인식과 함께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희망 등을 전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이 변할 경우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는 현실 인식도 밝혔다.
이와 관련, 정부는 "북한은 범죄정권" 발언의 파장을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유럽순방을 마치고 이날 낮 귀국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인천국제공항에서 "관련국들이 서로 (6자회담) 참여 상대에 대한 표현을 자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정부는 `9.19 공동성명' 이후 그 이행방안을 협의하는 중요 국면에 진입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자극하는 발언이 자칫 모멘텀 상실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현재 조사가 진행중인 마카오 소재 중국계 은행인 `방코 델타 아시아(BDA)' 사건과 관련, 그가 북한의 연루 사실을 확언했다는 점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토론회에서 "북한은 정권 주도로 마약밀매를 한다든가 (위폐를 제조해) 아일랜드 공화국군이 사용토록 하는 등의 불법활동을 하는 정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제재를 풀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다른 나라의 돈을 정권 차원에서 위조한 것은 나치정권인 아돌프 히틀러 이후 처음"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이 사건에 대해 지난 몇 달간 미국이 취한 조치로 북한의 불법 활동을 중단시키는 성공을 거뒀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금융제재의 원인이 된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 그동안 써오던 `돈세탁'(money-laundering)이라는 표현 대신 `화폐위조'(money-counterfeit)라고 명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미 당국이 확실한 물증을 확보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은 BDA 사건에 대한 조사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북한의 범죄 연루를 확언하는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방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중이며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앞서 미 행정부는 지난 9월16일 북한이 이 은행을 통해 위조달러 지폐를 유통시키고 마약 등의 불법 국제거래 대금을 세탁하는 등 자금 조달과 융통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이를 발표한 바 있다. 이어 미 애국법 제311조에 따라 이 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고 자국 금융기관들이 이 은행과 일체의 직.간접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다른 나라 들에 대해서도 해당 은행의 불법 금융 활동에 유의토록 통보했다. 이로 인해 마카오 시장에서는 BDA가 망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면서 예 금 인출이 줄을 이었고 마카오 은행감독기구가 은행 구제 차원에서 모든 거래를 동 결시켰고 물론 북한 기업의 계좌도 막혔으며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11월 제5차 1단계 6자회담에서 금융제재를 강하게 거론하고 이와 관련한 북미간 별도의 회담을 요구했다. 북한은 이어 2일에는 조선중앙통신을 통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표형식으로 미화 위조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이에 바탕을 둔 금융제재는 모략소동이며, 따라서 금융제재 해제는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필수적인 요구이고, 합의대로 6자회담 단장급 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북 금융제재 북미간 공방이 차기 6자회담 개최의 걸림돌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버시바우 대사가 이처럼 강한 언급을 하고 나선 것은 금융제재 문제가 6자회담에서의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은 위폐사건은 단순한 경제범죄가 아닌 금융시장 혼란과 이를 통한 안보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북 금융제재 공방을 둘러싸고 북미 양국이 `강 대 강'으로 맞서는 양상을 보이면서, 차기 6자회담 재개의 돌파구 마련의 자리로 추진돼 온 6자회담 수석대표들간의 18∼20일 제주도 회동은 그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2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의 카운터 파트인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을 만난데 이어, 현재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의 제9차 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3 회의 겸 제1차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사전 준비를 위한 고위관리회의에 참석해 중국, 일본, 러시아 3개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과 제주도 회동 성사를 위한 협의를 진행중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그러나 대북 금융제재와 관련된 미국의 조치는 "북한을 겨냥한 것이 아닌 불법 금융활동에 대한 일반적인 조치"라고 강조, 나름대로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그는 "이러한 불법 활동은 북한의 단기수익을 올리는데는 일조하겠지만 장기적으로 핵심이익을 저해할 것"이라며 "만약 북한이 외화위조와 한반도, 중국, 러시아에도 위협이 되는 마약밀매 등을 하지 않고 문명국 기준을 지켜준다면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개혁 가능성과 관련, 버시바우 대사는 "2002년 7.1 경제조치로 제한적이지만 개혁을 도입했다"면서 "북한이 인권개선을 위해 국제기구 모니터 요원의 입국과 식량모니터를 허용해서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인교준 기자 kjih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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