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26 15:13
수정 : 2018.10.26 22:18
NBC 메긴 켈리, ‘정치적 올바름’ 논하다 ‘실언’
“핼러윈 때 블랙페이스 분장 하는 게 무슨 문제냐”
흑인 웃음거리 삼은 쇼 떠오르게 해…“잘못했다”
‘폭스 뉴스’ 진행 때도 인종차별적 발언 전력
스타 앵커인 미국 <엔비시>(NBC) 방송의 메긴 켈리(48)가 인종차별적 발언 탓에 퇴출 위기에 몰렸다.
<시엔엔>(CNN)은 켈리가 ‘메긴 켈리 쇼’에서 한 발언 때문에 프로그램 진행을 중단했으며, <엔비시>와 퇴직 조건을 협의하고 있다고 26일 보도했다. 변호사 출신인 켈리는 2004년부터 <폭스 뉴스> 진행자로 명성을 키웠고 2017년 1월 <엔비시>로 옮기면서 더욱 화제가 된 인물이다. <엔비시>와 2300만달러(약 263억원) 연봉으로 3년짜리 계약을 했다.
‘핼러윈 때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한 게 문제가 됐다. 그는 23일 프로그램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주제로 패널들과 얘기하다,‘정치적 올바름’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입으면 안 된다는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영국 켄트대가 핼러윈(10월 말일) 때 카우보이 복장을 금지했다면서 “인종주의 문제는 어떤가”라고 했다. 이어 “핼러윈 때 백인이 블랙페이스를 하거나 흑인이 화이트페이스를 하는 건 곤란하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특정 캐릭터 복장을 하는 건 문제가 안 됐다”고 했다. 또 “누군가 어떤 복장이 모욕적이라고 여긴다면, 그(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고, 흑인이 백인으로 분장하는 것)건 공정한 게임이라고 말해줘야 한다. 그렇게 입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미 삼아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고 흑인은 백인으로 분장한다는데 왜 문제를 삼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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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공연된 `블랙페이스' 쇼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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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블랙페이스(blackface)가 단순히 재미로 백인이 흑인 분장을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블랙페이스는 미국에 노예제가 온존하던 19세기에 등장한 쇼를 칭하는 것으로, 흑인들에 대한 경멸을 재미로 삼는 장르다. 블랙페이스 쇼는 백인 배우가 얼굴을 시커멓게 칠하고 흑인의 두터운 입술을 강조하는 분장을 하고서는 노래를 부르며 흑인을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묘사했다. 이런 쇼는 1950~60년대에 흑인 민권운동이 성장하면서 금기시됐다.
켈리의 발언에 비난에 쏟아졌다. <엔비시> 경영진은 켈리한테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라고 종용했다. 켈리는 이튿날인 24일 방송 첫머리에 “잘못했다.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나라에서 블랙페이스는 인종주의자들에 의해 끔찍한 뜻으로 쓰여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핼러윈이나 다른 때 그 분장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출연자들도 그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했고, <엔비시>의 다른 프로그램 진행자도 방송에서 켈리의 ‘실언’을 비난했다. 결국 켈리는 25일 아침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켈리의 말을 실언으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미 극우 성향의 <폭스 뉴스>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여러 번 논란에 휩싸인 그가 블랙페이스의 역사적 맥락을 모르고 한 발언은 아니라는 것이다. 켈리는 <폭스 뉴스>에 있을 때 “예수도 백인이고, 산타도 백인”이라며 백인우월주의적 시각의 말을 했다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엔비시>가 켈리의 퇴출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거액을 주고 영입한 스타 앵커의 시청률이 신통치 않다는 판단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켈리는 애초 주중에 오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일요일에도 뉴스 매거진 프로그램을 맡았다. 그러나 시청률 저조로 일요일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결국 그는 <폭스 뉴스>하고나 궁합이 맞는 것 같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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