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9 18:24
수정 : 2005.12.29 18:24
시민단체 “부시, 자동소멸 설계 강조 여론비난 회피”
미국이 내년 초 신형 대인지뢰를 생산하기로 결정해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국제 인권 관련 뉴스 사이트 <원월드>는 “미국이 28일 새 대인지뢰 ‘스파이더’를 2007년 3월부터 생산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1990년대 초만 해도 대인지뢰를 없애자는 운동에 앞장섰던 미국이 새 지뢰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파이더는 미국의 에이티케이(ATK)와 텍스트론이 함께 개발한 지뢰로, 원격 조정으로 폭발 강도를 정하거나 일정 기간 뒤 자폭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지뢰 반대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지뢰퇴출’의 앨리슨 벅 회장은 “우리가 우려했던 상황”이라며 “이는 과거 미국이 취했던 긍정적 조처들의 대부분을 잃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여름 미 국무부가 스파이더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뢰퇴출’과 ‘휴먼라이츠워치’ 등 시민단체들은 계획 철회를 요구해 왔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미군은 5월부터 이라크에 새 원격조정 지뢰인 ‘매트릭스’를 깔기 시작했음을 언론보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며 “매트릭스는 스파이더를 위해 개발된 기술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파이더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은 그 전에 이미 개발됐다는 의미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1996년 “가급적 빨리 모든 대인지뢰 사용을 중단하기 위한 전세계적 조약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1997년 마련된 지뢰의 사용·생산·수출·보관을 전면 금지한 국제 조약인 지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150여개국이 이 조약에 서명했지만, 미국·러시아·중국·한국 등 40여개 나라는 서명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은 부시 행정부 들어 지뢰를 계속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군사 작전에서 미군 보호를 위해 효과적이고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최근 부시 정부는 ‘지뢰’라는 단어 대신 ‘매트릭스’나 ‘스파이더’ 등 새 지뢰의 이름을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시민단체들은 지적한다. 새 무기들은 특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폭발해 사라지게 설계돼 있음을 강조해, 국제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함이다. 구즈 국장은 “자폭장치가 돼 있어도 여전히 무고한 시민들에게 위험 덩어리”라며 “안전한 지뢰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지뢰는 군인, 민간인, 평화활동가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며, 사람을 죽이기 보다는 부상을 입히도록 설계된 비인도적 무기”라고 설명한다.
‘국제지뢰금지운동’ 자료를 보면 지금도 해마다 1만5천~2만명이 지뢰로 숨지거나 장애인이 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전쟁이 끝난 뒤 평화 상태에서 변을 당하고 있다. 2005년 조약 서명국들은 모두 700만개 가량의 대인지뢰를, 비서명국들은 1억6천만개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윤진 기자
min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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