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1.17 11:35 수정 : 2006.01.17 11:35

2001년 9월11일 새벽 2시, 빅토르 로하스(30)는 여느 때처럼 식당 탁자를 모두 닦은 뒤 문을 잠그고 퇴근했다. 그는 세계무역센터 꼭대기에 있는 음식점 ‘윈도즈 온 더 월드’에서 일했다. 몇 시간 뒤, 9·11 테러가 터졌고, 그는 73명의 동료들과 직장을 한꺼번에 잃었다.

그 식당 종업원 가운데 350명이 살아남았다. 이들의 충격과 슬픔의 정도는 같은 경험을 가진 그들만이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지역 노조 등이 9·11로 실직한 식당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뉴욕시 ‘레스토랑 기회 센터’에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구직 정보를 나누기도 했다. 전처럼 보수 좋고 노조 가입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는 매우 어려웠다. 절반 이상이 1년 이상을 실업자로 지냈다.

안토닌 린더는 가사 도우미 등 비정규직 일을 계속 했지만, 혼자 두 아이를 키우기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없었다고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가끔은 전화요금을 못내 전화가 끊기기도 했다.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준 것은 ‘종업원 회사’였다. 일부 동료들이 그들의 꿈을 담은 식당을 함께 차려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린더는 ‘의도는 좋지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 뛰는 모습을 보고 조금씩 마음이 바뀌었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종업원 회사’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50명이 함께 200만달러를 모았고, 식당 문을 열기까지 각각 100시간씩 똑같이 일했다.

지난 5일, 맨해튼 인근 라파예트가에서 ‘컬러스’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50명은 똑같은 지분을 갖고 이윤도 똑같이 나눠 갖는다. ‘컬러스’는 먼저 간 73명의 동료들을 기리고, 살아남은 이들의 우정과 평등을 지키는 곳이 됐다. 이들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게 일하러 간다”고 말했다.

<헤럴드뉴스>는 이 식당에서는 콩고 해산물 스튜에서 방글라데시 파이까지 여러 나라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종업원들은 20여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다. 그래서 식당 이름도 ‘컬러스’다. 이들이 각자 집에서 맛있게 먹는 전통 음식들 중에서 메뉴를 정했다.

‘레스토랑 기회 센터’쪽은 “이 실험이 종업원 소유 레스토랑의 한 전형이 되기를 바란다”며 “모두가 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임금을 받으며, 존경과 위엄 속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하스는 전처럼 바텐더 일을 한다. 그가 ‘컬러스’에서 처음 선보인 칵테일은 ‘컬러스 드림’이다. 린더는 “매일 9·11에서 살아남은 것에 신에게 감사하고, 또 내가 여기(컬러스)에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울먹였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