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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총리 지명자 이스마일 하니야 |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둔 하마스는 16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 후보로 이스마일 하니야(43·?5c사진)를 지명했다.
하니야는 이날 총리로 지명됐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지만 아직도 내부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그러나 현지 분석가들은 하니야의 총리 지명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날 총리로 지명된 하니야는 대화와 협상을 거부하지 않는 실용주의자로 분류되지만 무력투쟁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강경파이기도 하다.
지난달 총선 때 하마스 후보 명부 1위에 올라 전국구로 자치의회에 진출한 하니야는 총선 기간에 활발한 언론 접촉을 통해 하마스의 견해를 대변하는 창구 구실을 맡았다.
1963년 가자지구의 샤티 난민촌에서 태어난 그는 유엔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해 운영한 학교에서 초중등 교육을 받은 뒤 가자의 이슬람대학에서 이슬람문학을 전공했다.
자녀를 11명 둔 그는 지금도 난민촌의 허름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학시절엔 하마스의 모태인 무슬림형제단의 학생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이슬람 부흥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87년 졸업 후 하마스 창시자인 아메드 야신의 보좌진에 합류했다.
그는 그해 시작된 팔레스타인인들의 반이스라엘 점령투쟁인 제1차 인티파다에 참가해 수차례 투옥됐고, 92년 12월 이스라엘 당국의 추방으로 레바논 망명길에 올랐다. 1년의 망명생활을 거친 뒤 가자로 돌아와 이슬람대학 학장이 됐으며, 98년 야신의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이 이끌던 자치정부와 하마스 사이의 연락관 일을 수행했다.
2004년 하마스 최고 지도자인 야신과 압델 아지즈 란티시가 차례로 이스라엘 군에 살해되면서 하마스 최고 지도부를 구성하는 인물군에 포함됐다. 하니야는 그 자신도 2003년 9월 야신과 함께 가자지구의 한 가옥에 있다가 이스라엘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대화와 타협을 배척하지 않아 실용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하니야는 이스라엘에 빼앗긴 팔레스타인 땅을 되찾을 때까지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할 권리가 있다며 무력투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한 언론 회견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익과 권리이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권리를 인정해야 할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대화의 전제 조건임을 분명히했다.
일각에서는 잘 다듬어진 턱수염과 콧수염을 하고 있는 하니야의 깨끗한 이미지가 마무드 아바스 수반이 이끄는 파타당의 부패 이미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라말라/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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