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04 19:44
수정 : 2006.06.04 19:44
케냐의 북서쪽, 수단과의 국경 인근에 있는 투루카나. 4~5년째 비다운 비가 오지 않는 동아프리카의 극심한 가뭄은 이곳도 예외가 아니랍니다. 바다처럼 크고 소금기를 머금은 투루카나 호수는 계속된 가뭄으로 물이 너무 짜져서 고기가 잡히질 않습니다. 가뭄으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이 불모의 땅에는 젖 한 동이 짤 수 있는 염소 한 마리 찾기도 힘듭니다.
투루카나의 작은 마을 마엔델리온. 이 황폐한 아프리카의 오지 마을에서도 아이들은 붉은 흙먼지를 날리며 축구를 합니다. 아니 이것을 축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축구공이 없습니다. 운동화를 신은 아이도 없습니다. 한 아이가 비닐을 둘둘 말아오면 동네 아이들 열댓명이 순식간에 모여듭니다. 아이들의 맨발이 부딪치고 거친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비닐뭉치 공은 튀어 오르지 않습니다. 멀리 나가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이 비닐뭉치 공을 뺏으려고 아이들은 한데 뒤엉킵니다. 아이들은 소리치며 즐거워합니다.
아이들 가운데 한 녀석이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에야내인데, 이 마을에서 축구를 제일 잘한답니다. “축구가 재미있어요. 제가 한번 공을 잡으면 저와 1 대 1로 해서 공을 뺏을 수 있는 애는 없어요. 축구할 때만큼은 배고픔을 잊을 수 있어요.” 자신있게 말하는 에야내의 표정이 한없이 밝아집니다.
구호식량으로 받은 옥수수로 하루 한끼, 운 좋은 날은 두끼를 먹지만, 이 아이들은 축구를 멈출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에겐 장난감이 없습니다. 컴퓨터는커녕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습니다. 축구는 이 아이들에게 유일한 놀이고 기쁨입니다. 마을에 축구공 하나만 있어도 온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하루 한끼만 먹어도 웃는 아이들, 축구공 하나에 행복해지는 아이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월드비전이 〈한겨레〉와 함께 벌이는 ‘2006 월드컵, 2006개의 행복’. 우리가 월드컵에 환호할 때, 가난 때문에 이 축제에 함께하지 못하는 지구촌 한 쪽의 어린이들과 기쁨을 나누려는 자그마한 노력입니다.
케냐 투루카나에서 김보경
(월드비전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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