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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레바논 공격 전쟁범죄 논란 |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이 대규모 민간인 희생과 사회기반시설의 초토화를 초래하면서 전쟁범죄 논란이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25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자국 병사 1명을 납치하자 사흘 만에 가자지구 공격을 개시했다.
3주 넘게 계속된 이스라엘 군의 가자 공격으로 자치정부 외무부 건물을 포함한 공공건물과 교량, 도로 등 기간시설이 많이 파괴되고 약 100명이 희생됐다.
이스라엘이 지난 12일 시작한 레바논 공격에 따른 인적, 물적 피해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훨씬 능가한다.
이스라엘은 무장조직을 거느린 레바논 내 시아파 정치세력인 헤즈볼라가 자국 병사 2명을 납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한 이 공격을 통해 레바논의 사회기반시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또 무차별 공습에 따른 사망자만도 19일 현재 300명을 넘어섰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고개드는 전쟁범죄 논란 =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면서 내세운 논리는 자위권 행사다.
자국에 적대적인 세력이 병사를 납치해 안보를 위협한 만큼 무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또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자국에 로켓공격을 지속적으로 해온 만큼 이들의 공격 기반을 분쇄하기 위한 군 작전은 자위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법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공격목표가 사회기반 시설에 집중된 데다 희생자도 민간인이 많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논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루이즈 아버 유엔인권 고등판무관은 19일 제네바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스라엘과 레바논-팔레스타인 간에 고조되고 있는 무력충돌 과정에서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이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아버 고등판무관은 분쟁 당사자들은 모든 군사작전 과정에서 사안의 본질과 관계없는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노력을 기울이고 과잉대응을 금하는 `비례원칙'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인권법은 교전 중의 민간인 보호를 분쟁 당사자들에게 최고의 의무로 강제하고, 이 의무는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규정한 국제형사법에도 명시돼 있다며 민간인 인명피해 규모 및 예측가능 정도에 따라 지휘통제 계통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쟁범죄의 책임을 지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무차별적인 폭격에서는 민간인이 타깃이 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해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서 진행하고 있는 군사공격이 전쟁범죄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카이로의 한 군사 소식통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와 레바논 공격은 국제법상 정당성 논란이 일고 있는 선제 예방공격으로 볼 수 있다"며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이스라엘의 공격행위가 전쟁범죄를 구성하는 지 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란이 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에 따른 피해 배상문제도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은 지난 1주일 사이 헤즈볼라 거점 시설을 분쇄하는 동시에 헤즈볼라에 대한 레바논 국민의 불만여론을 고조시키려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으로 사회기반시설과 가옥 등이 대거 파괴돼 수십억 달러 상당의 물적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19일 베이루트에서 각국 외교사절을 대상으로 한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레바논 땅이 폐허로 변하고 있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스라엘로부터 배상을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지도부 전범 재판 가능할까 =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전쟁범죄를 구성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스라엘의 전쟁지도부인 올메르트 총리나 아미르 페레츠 국방장관 등을 국제 전범 재판에 회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우방인 미국이나 서방권 국가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전범재판을 추구하더라도 이스라엘이 거부할 것이므로 그 실효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레바논이나 미국과 이스라엘을 "테러의 축"으로 보고 있는 아랍권은 이스라엘 지도부를 전범재판에 넘기는 문제를 부각시킬 것으로 보여 이 문제는 향후 아랍권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소재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 아랍변호사연맹(ALU)은 지난 2월 이집트변호사협회와 공동으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전 총리의 전쟁범죄 혐의를 심판하는 모의 재판을 열었다.
당시 피고인으로 지목된 3개국 정상이 출석을 거부해 궐석으로 진행된 이 재판에서 공소유지를 담당한 사메 아슈르 ALU 회장은 이라크 전쟁과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거론하며 이들 3개국 정상이 국제사회의 호의를 악용하고, 이스라엘의 이익만을 좇는 정책을 추구해 이스라엘이 중동지역을 장악하도록 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고, 주심판사 역할을 맡은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피고인들을 현실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지만 기소된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었다.
어쨌든 레바논과 아랍권이 레바논ㆍ가자지구 침공과 관련해 이스라엘 지도부의 반인륜 전쟁범죄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경우 이스라엘 지도부의 해외 여행에 제약에 따르는 등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입지는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석은 샤론 전 총리가 지난해 9월 영국을 방문해 달라는 블레어 총리의 요청을 전범 혐의로 체포될 것을 우려해 거절한 사례가 뒷받침하고 있다.
당시 블레어 총리는 유엔 정상회의 참석 차 미국을 방문한 샤론 전 총리를 뉴욕에서 만나 초청의사를 전달했지만 샤론 전 총리는 영국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논란이 일 것을 우려해 거절한 것으로 영국 언론을 통해 보도됐었다.
영국은 국적이나 범죄행위 장소에 관계없이 전쟁범죄 혐의자에 대한 영국 법원의 형사관할권을 인정해 인권단체들이 팔레스타인인 학살 혐의로 고발해 놓은 전ㆍ현직 이스라엘 군 지휘관들이 영국에서 처벌받을 수 있다.
실제로 가자지구 이스라엘 군 사령관을 지낸 도론 알모그는 블레어 총리가 샤론 총리에게 초청 의사를 전달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 11일 부인과 함께 항공편으로 런던 히드로공항에 도착했다가 영접나온 이스라엘 대사가 전범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라고 알려줘 기내에서 머물다 그대로 귀국한 사례가 있다.
1982년 레바논 침공 때 국방장관으로 재직한 샤론 전 총리는 이를 거론하면서 블레어 총리의 초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단 할루츠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도 지난해 같은 이유로 영국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접은 바 있다.
이집트의 한 소식통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국제사회의 중재를 받아들여 휴전에 합의하더라도 아랍권의 반(反) 이스라엘 정서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그 후유증을 수습하는 일이 또 다른 난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 (카이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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