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키프로스.중동정책에 불만 증폭
터키의 반(反)서방 감정이 심상치 않다.
유럽연합(EU) 가입과 키프로스 분쟁,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이라크 내 쿠르드족 반군 문제 등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국제 정세가 터키인들을 반미, 반EU로 몰아가는 양상이다.
압둘라 굴 터키 외무장관은 지난 19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온건한 터키인들의 생각이 반미, 반EU로 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젊고 활동적인 지식인들의 반서방 감정은 터키 전체로 확산돼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게 굴 장관의 주장이다.
◇ 터키의 EU 가입과 키프로스 분쟁 = 터키의 EU 가입은 세속주의가 지배해온 터키로선 오랜 숙원이지만, EU로선 늘 '뜨거운 감자'였다.
이슬람 국가를 EU에 편입시키는데 대한 기존 EU 국가들의 반감도 문제지만 키프로스 분쟁, 터키의 인권 상황, 각종 문화.법규의 상이성 등이 지금도 가입 협상의 발목을 잡고 있다.
터키는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지 46년 만인 지난해 10월 가입협상을 시작키로 합의했지만 EU 회원국인 그리스계 남키프로스는 키프로스 국적의 선박 입항과 항공기 기착을 허용하지 않으면 협상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EU는 터키에 대해 남키프로스를 인정하고 항구와 공항을 개방하라고 촉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가입협상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해왔다.
그러나 레젭 타입 에르도간 터키 총리는 최근 이 같은 EU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터키계 북키프로스에 대한 국제 사회의 봉쇄 정책이 풀리기 전에는 이 문제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EU 가입도 중요하지만 키프로스 문제로 자존심을 굽히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 서방의 중동정책과 쿠르드족 = 이라크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최근 정책 노선도 터키로선 수용하기 힘든 문제다.
굴 장관은 최근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놓고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영국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미국을 추종하는데 대해 "터키인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일관된 이스라엘 지지에 불만이 누적돼온 터키인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건 최근 쿠르드족에 대한 미국의 태도다.
최근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공격으로 터키 군인과 경찰관이 잇따라 희생되고 있는 가운데 터키가 이라크 국경에서 반군 소탕을 위한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준비하자 미국이 터키의 이 같은 움직임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터키로선 자국민의 잇단 희생에 반 쿠르드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마당에 지금까지 수차례 터키 정부의 이라크 내 쿠르드족 기지 소탕 요구를 거절해온 미국이 터키의 독자적인 군사행동까지 제약하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터키의 이유있는 고자세 = 키프로스 분쟁이나 쿠르드족 문제에서 터키가 서방 측에 제 목소리를 내고 외무장관이 터키인들의 반 서방 감정을 경고하고 나설 수 있는 것은 국제적 역학 관계에서 터키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 때문이다.
미국이나 EU로선 이슬람 세계의 가장 중요한 맹방이자 중동과 유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터키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에 터키는 민주주의와 이슬람교가 공존할 수 있다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기도 하다.
더욱이 최근 카스피해 원유를 지중해로 수송하는 '바쿠-트빌리시-세이한(BTC)' 송유관과 러시아의 원유 및 천연가스를 유럽시장에 공급하기 위한 새로운 파이프라인 등이 모두 터키를 경유지로 하고 있다는 점도 터키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지금까지 서유럽으로의 원유 공급 루트를 대부분 러시아에 의존해온 서방 국가들로선 에너지 루트를 다양화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터키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터키가 에너지 안보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유럽 국가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미국과 EU는 중동 지역 안정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터키의 반 서방 감정이 확산되는 것을 지켜보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관측통들의 전망이다.
http://blog.yonhapnews.co.kr/faith2m/
권혁창 특파원 faith@yna.co.kr (부다페스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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