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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22 10:48 수정 : 2006.08.22 10:48

9.11 테러를 배후조종한 오사마 빈 라덴은 신앙심이 두터운 얌전한 소년이었다고 CNN방송이 그의 어린 시절 친구의 말을 인용, 21일 보도했다.

빈 라덴의 동네친구로 사우디아라비아 유력지 알 마디나흐 편집국장인 칼리드 바타르피는 CNN이 제작, 23일 방영할 예정인 다큐멘터리 "빈 라덴의 족적"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타르피에 따르면 빈 라덴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동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업가, 즉 제2의 빌 게이츠가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로서는 빈 라덴이 온 세상이 아는 테러조직의 지도자로 대량 살인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충격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당신이 그의 삶을 모두 아는 얌전한 소년이 어느날 사라졌다 세계 제일의 살인자가 돼 나타났다고 생각해보라"

바타르피는 어린 시절을 보낸 제다의 조용한 거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빈 라덴이 9.11테러의 배후조종자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털어 놓았다.

바타르피가 기억하기로 빈 라덴은 가라테(空手)영화를 좋아했다. 미제차를 몰며 하루 몇차례씩 이슬람사원을 찾아 자기식의 조용한 방법으로 경의를 표하는 내성적인 십대 소년이었다.

빈 라덴 가문의 사는 모습에서 그의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성공한 사업가라는 사실을 알아 차리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이웃 어린이 사이로 축구를 많이 했다. 바타르피는 동네팀 주장이었고 빈 라덴은 그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웃팀과 경기중 휴식을 취하느라 축구장 밖을 어슬렁대고 있을 때 였다. 누군가 달려와 상대팀 선수가 빈 라덴에게 거칠게 굴고 있다고 말했다.

쫓아가 녀석을 빈 라덴에게서 떼어냈다.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빈 라덴은 "네가 몇분만 기다렸더라면 내가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이 일은 빈 라덴이 폭력을 피하고 평화를 원하는 소년이라는 이미지로 그의 뇌리에 남아있다.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에서 알 아크사 사원을 포함, 예루살렘을 완전히 장악했다. 빈 라덴은 이때 종교적인 목표에 사로잡혔다. 예루살렘 해방에 대비해 너무 유약해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곤했다. 그는 수영과 승마를 배우고 주말에 해변 대신 사막에 가는가 하면 자신의 캠프에 바타르피를 초청하는 등 준비를 했지만 아직 진짜 명분은 찾지 못한 상태였다.

관심분야와 이해관계가 다른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에서 흔히 그렇듯 빈 라덴과 바타르피도 연락이 끊어졌다.

빈 라덴은 대학에 가면서 신앙심이 더 깊어졌다. 그는 사우디 주변에서 빌딩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다. 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빈 라덴은 명분을 발견했다.

당시 몇차례 만남에서 바타르피는 어린 시절 친구의 변화를 알아 차렸다. 빈 라덴은 아프간 전쟁에 대해 자신이 연설하는 모임에 바타르피를 초청했다. 모임에서 빈 라덴은 돈을 모금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아프간에 가서 싸우라고 격려했다.

빈 라덴은 아프간에서 돌아올 때마다 신앙심이 더 깊어지고 자신의 길을 더 확신하게 됐다. 부끄러움을 덜 타는 대신 말이 더 많아지고 더 확신에 차게 됐다.

빈 라덴은 옛 소련과의 전쟁을 보여주려 친구들을 몇차례 아프간으로 초청했지만 바타르피는 가지 않았다.

그는 폭력과 전투, 그리고 문화가 빈 라덴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고 추적을 받으면서 가족, 친구, 원래의 생활에서 격리돼 동굴에 기거하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바타르피는 전쟁에 나간 순진무구한 병사가 돌아올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면서 빈 라덴을 변명하려는게 아니라 그를 이해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lh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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