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헌법초안 ‘샤리아’ 엄격적용 여성권 제한 “의회의석 할당 폐지등 후세인 때보다 후퇴”
언제 자살폭탄 공격이 벌어질지 모르는 바그다드 중심가 광장에서 지난주 여성 200여명이 모여 ‘남녀평등 헌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라크의 새 헌법 초안이 이슬람법(샤리아)을 엄격하게 적용해 여성 권리를 크게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라크 여성들의 불안이 커져가고 있다. 여성계 ‘이란과 닮은 꼴’ 우려 미국이 이라크 새 정부와 이란의 접근을 견제하려 하는 가운데, 이라크 여성들도 이라크가 이란과 닮은 ‘이슬람 신정국가’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에이피통신>이 25일 입수해 보도한 헌법 초안 내용을 보면, 민법 부분에서 이슬람법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두 6장으로 구성된 헌법에서 민법을 다룬 제2장의 19조는 “어떤 종교나 종파의 신도도 종교·종파의 신앙에 따라 시민으로서 법적 지위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시민의 법적 지위를 종교에 맡기는 이런 조항은 결혼, 이혼, 상속에서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고 사회적 지위를 하락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이슬람법을 문구대로 해석하면 법정에서 여성의 증언은 남성의 절반으로만 인정되며 결혼이나 이혼 결정권도 모두 남성이 갖는다는 것이다. 여성운동가 하나 에드와르는 <비비시>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이라크법에서는 남성이 두번째 결혼을 하려면 첫째 부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며 이슬람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이럴 필요가 없어 일부다처제가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의회 의석의 3분의 1을 여성에게 할당하고 있는 현재의 제도도 폐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속에서도 여성은 남성 몫의 절반만 갖게 된다.최근 시아파 의원들은 여성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헌법에서 이슬람법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시아파 의원인 아말 무사는 “남녀는 제한적으로 평등하다. 여성과 남성은 각각 다른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미국 ‘중동 민주화론’ 무색해져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사담 후세인 통치 시절 이라크는 중동 지역에서 가장 세속적인 국가였고, 1959년 도입된 현행 시민법은 남녀에게 거의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뒤 ‘중동민주화’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여성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권리가 후세인 시절보다 훨씬 후퇴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보수적인 아랍 걸프국가인 쿠웨이트에서 여성 참정권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사상 최초로 여성 장관이 임명되는 등 다른 국가들의 변화 움직임과도 대조된다. 쿠르드·수니파 불만 고조 지난 2년 동안 치안불안으로 폭력이 심각해지면서 여성들은 외출 자체가 힘들어졌고 머리수건인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은 공격을 받기도 했다. 여성단체인 이라크독립여성그룹의 마이순 담루지 대표는 <비비시>에 “새 헌법이 여성의 지위를 거꾸로 되돌려 놓을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시아파 주도의 헌법 초안에 대한 쿠르드족이나 수니파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일부 시아파 의원들은 ‘연방 이슬람 공화국’ 체제와 시아파 최고지도자의 특별한 지위를 헌법에 명시하자고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이라크 제헌의회는 다음달 15일까지 헌법 초안을 완성해 10월 중순까지 이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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