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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3 18:39 수정 : 2005.08.16 17:07

박종평/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전문가의 눈

압둘라 새 국왕은 10년 전 이복형 파드 국왕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실질적으로 사우디왕정을 이끌어 왔다. 건국자 이븐 사우드 이래 왕위계승이 형제간 세습으로 이어진 전통에 따라 계승절차는 신속히 이뤄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청교도운동인 와하비즘을 건국이념으로 한다. 와하비즘을 통치이념으로 이븐 사우드는 아라비아반도 정복과정에서 유력부족과의 결혼을 통합수단으로 이용했다. 그의 부인이 무려 22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위세습 규칙은 지금까지 그와 결혼한 부족의 모계 아들 중에서 연장자 순이었다. 가장 강력한 모계는 수다이리 가문으로, 고 파드 국왕과 왕세제로 지명된 술탄 국방장관, 나이프 내무장관 등이 포함된 소위 ‘7형제’들이다. 삼마르 가문의 압둘라 국왕 이후 당분간 국왕계승은 이들의 독무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압둘라 국왕은 안팎으로 많은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적으로는 왕권에 대한 도전이다. 당분간 왕권 도전은 왕족 내부보다 급진 이슬람주의자들과 소외계층이 주도할 것이다. 소수 왕자들이 중요 직책을 거의 독점하고 있으며 사우디왕가는 석유판매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부를 통제하고 있다. 왕가의 오일달러 사유화는 석유가격 하락과 막대한 국방예산 배정으로 사우디 재정이 사회보장제도가 위축될 정도로 악화될 때에도 그들의 외국투자는 더욱 증가될 정도였다. 소외된 많은 사우디인들이 왕정에 불만을 갖게 되었고 미군의 사우디 주둔 이후 이들은 급진 이슬람주의자들과 결합하여 조직화되고 무장화되는 중요 이유가 됐다.

미국-사우디 관계는 압둘라 국왕에게 당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이다. 미국과 사우디 왕정은 석유자원 확보와 왕정체제 보존이라는 이해관계 속에서 가장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미군의 사우디 주둔이 시작된 걸프전 이후 일기 시작한 반미감정은 9·11 동시테러와 이라크 침공으로 급격히 악화되었고 두나라 관계도 냉각되었다. 미국은 사우디 안 과격 이슬람세력화와 테러가담을 독재체제에서 나온 결과로 인식하고 사우디 왕정에게 민주체제로 개혁을 요구했다. 사우디왕정은 미국의 이스라엘 편애와 미군의 사우디주둔에 그 책임이 있다고 대응했다. 양국의 불편한 관계는 미 중동사령부를 사우디에서 카타르로 이전하면서 더욱 심화됐다.

대행체제 동안 사우디에 처음으로 지방선거를 실시한 압둘라 국왕은 초기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보수집단과 민주제 도입을 주장하는 개혁집단이 대립하는 상황에 있다. 또 국내 반미감정들을 고려해 미국과의 관계도 재정립해야 할 입장이다. 압둘라 국왕은 술탄 왕세제와 나이프 내무장관 등 왕실 보수세력과 이슬람 종교학자 집단을 압도할 정치기반도 취약하고, 개혁집단의 조직화도 미미하다. 대외관계에서도 사우디왕정체제가 자체 보존능력을 갖거나, 미국을 대체할 동맹국을 발견하는 것도 당분간 불가능하다. 설사 변화 가능성이 있다 해도 친미 실권자들은 그것을 용납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압둘라 국왕의 개혁 수준은 미국의 개혁 압력과 보수 왕족들의 수용 범위 내에 한정될 것이다.

박종평/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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