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좌ㆍ우파 정권 구분없이 어느 정권에서나 무력 점령한 가자지구와 동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요르단강 서안 등 팔레스타인인 거주지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방법으로 정착촌을 이용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거주지 구석구석에 들어서게 된 정착촌과 정착촌을 촘촘하게 연결한 관통도로망, 그리고 도로 곳곳에 설치된 이스라엘 군 검문소와 장애물들은 가자와 서안지역을 여러 조각으로 동강난 고립된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동의 자유 등 팔레스타인인들의 기본권 침해가 수반되는 정착촌 확대 과정에서 깊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의 절망감은 결국 1987년 12월 이스라엘에 대한 반점령 투쟁인 제1차 인티파다로 분출된다.
이스라엘의 건국영웅으로 추앙받는 모세 다얀은 이스라엘 안보를 수호하는데 정착촌이 군대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이며, 정착촌이 없다면 이스라엘 군이 점령지 안에 주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정착촌의 전략적 의의를 역설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이 같은 안보논리에 기초해 `타미르 계획'과 `예루살렘 종합계획' 같은 정착촌 건설계획을 차례로 수립해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추진하면서도 정착촌 건설에 매진해 왔다.
지금까지 가자지구에는 21곳의 정착촌이 조성돼 8천500여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으며, 서안지역에는 약 120곳의 정착촌이 퍼져 있다. 서안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 정착민은 2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이중 가자 정착촌 전부와 서안지역의 북부 4곳을 철수할 예정이다.
(카이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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