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4 18:00
수정 : 2005.09.04 18:03
이슬람주의 역사
이슬람주의의 요체는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 이슬람법(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이 이슬람주의가 세계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그 이전엔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등으로 대표되는 아랍사회주의가 이슬람권의 정신적 기둥 노릇을 했다. 그러나 1967년 이스라엘과의 제3차 중동전쟁 참패로 쇠퇴하기 시작해, 소련의 몰락과 함께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애초 이슬람주의 세력 성장을 도운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이슬람주의자들의 무장을 적극 지원해 소련과 싸우도록 했다.
이슬람주의는 역사적으로 중동지역에 정치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대안 노릇을 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중동지역을 장악하려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당시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터키계의 오스만투르크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랍 민족주의를 퍼뜨렸다. 영국 등과 손잡고 오스만제국 전복에 나섰던 부족장들이 세운 대표적인 국가가 오늘날의 요르단과 이라크 등이다.
당시 등장한 대표적 이슬람주의 단체인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창시자 하산 알 바나는 서구 가치들은 무슬림들에게 조화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연구자들은 무슬림형제단이 초기엔 온건한 사회운동을 펼쳤으나, 주요 이론가였던 사이드 쿠틉 등 많은 단원들이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급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사이드 쿠틉은 이후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옹호한 대표적 이론가가 됐고 이후 많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사회주의의 실패’ 이후 과거 아랍사회주의의 기반이던 석유 이권을 위해 개입하는 서구에 대한 저항,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대한 분노, 만연한 빈곤과 빈부격차 등은 이제 이슬람주의의 토양으로 변했다.
홍미정 외국어대 교수는 그러나 “서구가 강조하는 알카에다 외에도 매우 다양한 이슬람주의자들이 다양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많은 이슬람주의 단체들이 서구 제국주의와 대항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이슬람주의를 채택하고는 있지만, 내부에서는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변화도 모색하고 있으며 더는 완전한 신정국가 수립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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