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05 17:27
수정 : 2017.11.0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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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연설 중인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의 모습. 베이루트/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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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헤즈볼라 규탄…“암살 위협” 토로도
“헤즈볼라 지원한 시리아 정권 안정 찾아
시아파 세력 커지자 사우디가 견제” 분석
NYT “친헤즈볼라 정권 땐 이스라엘에 공격 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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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연설 중인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의 모습. 베이루트/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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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중에 이란의 내정간섭을 비판하며 전격 사임했다. 사우디와 이란, 미국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는 가운데, 레바논 총리 사임의 배후에 사우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며 레바논이 중동 갈등의 새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신을 보면 4일 하리리 레바논 총리는 사우디 방문 중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리리는 “이란이 관여하는 곳마다 황폐함과 혼돈만 남는다. 이란은 아랍 세계를 파괴하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며 이란의 간섭과 이란의 비호를 받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비난했다.
하리리는 또 자신이 암살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라피크 하리리 암살 직전과 비슷한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내 목숨을 노리는 음모가 은밀히 계획되는 것을 감지했다”고 말했다. 라피크는 하리리 총리의 아버지로 1992~98년, 2000~2004년까지 총 10년간 총리직을 수행했고 퇴임 뒤 2005년 폭탄 공격으로 사망했다. 당시 헤즈볼라의 범행으로 의심됐지만 헤즈볼라는 부인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하리리의 사임은 반대파인 헤즈볼라조차 몰랐던 전격적인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2009년 처음으로 총리 자리에 오른 하리리는 2011년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지난해 말 다시 총리직에 올랐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하리리가 귀국한 뒤 추가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아운 대통령은 친헤즈볼라 인사로 알려져 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측근인 후세인 셰이크 알이슬람은 하리리 사임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하리리의 전격 사임에 사우디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엔엔>(CNN) 방송은 워싱턴 중동연구소를 인용해 “이번 사임의 주된 동력은 사우디일 것”이라며 “이는 레바논에서 이란의 영향력에 맞서려는 사우디의 결단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레바논은 대통령은 기독교, 총리는 수니파 무슬림, 의회 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 맡는 권력 분점 구조를 유지해 왔지만, 최근 헤즈볼라가 지원한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안정을 찾아가며 시아파 세력이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알자지라>는 “기본적으로 사임은 하리리가 정부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헤즈볼라는 레바논을 오랫동안 장악해 왔고, 이제는 시리아에서의 승리가 예측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총리 사임은 레바논에서 이란의 후원을 받는 시아파의 영향이 커지자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가 수니파인 총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지역 패권을 되찾아 오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핵협상 불인증으로 이란을 압박하고 있고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에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 지역에 혼란만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사임은 이란의 적들이 마땅한 선택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단 사우디와 미국은 하리리의 사임으로 레바논 정부의 주요 파트너를 잃었다”고 지적하고 “하리리 사임은 새로운 위험을 가져온다. 만일 다음에 친헤즈볼라 성향의 정부가 들어선다면 레바논 국가와 헤즈볼라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구실로 이스라엘이 새로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은 2006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를 납치했다는 이유로 헤즈볼라와 전쟁을 벌인 바 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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