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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27 19:14 수정 : 2006.04.27 23:04

네팔의 민주화시위에서 최대 군중이 모인 21일, 카트만두 외곽을 도는 순환도로는 시위에 나선 시민들로 가득찼다. <문화방송> 제공

핏빛 민주화시위, 네팔을 뒤바꾼 닷새

김상균 <문화방송(MBC)> 시사교양국 PD

‘민중의 승리! 민주주의 만세!’

1960년 4·19나 1987년 6월, 그 때와 같은 감격이 묻어난다. 4월24일 밤 갸넨드라 국왕이 의회 정상화 등 사실상의 ‘항복’ 선언을 한 직후 카트만두 시내에 뿌려진 네팔의 여러 신문 1면 제목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거리의 시위 모습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시민과 학생이 주력을 이룬 시위대에는 정치인들과 교수·변호사·의사 등 전문 직업인, 공무원 등이 가리지 않고 참여했다. 행진하는 시위대에게 물을 갖다주는 모습, 박수를 보내는 길가의 시민들도 십수년 전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 볼 수 있었던 바로 그 모습이다.

승리의 환호 뒤, 민주화 참여 세력간의 ‘뜻 모으기’도 다른 곳의 그것처럼 힘들고 지리할 것인가.

시민 수십만 목숨건 시위
야당에 타협 말도록 압박
왕 항복하자 "민주만세
다시 일상으로 … 물가급등 한숨

22일 오전 네팔의회당 총재인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전 총리(왼쪽 모자 쓰고 앉아있는 이)의 집에 7개 야당 대표들이 모여, 국왕의 권력이양 발표에 대한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통행금지령에 발 묶이다= 네팔 현지시각 4월20일 낮 12시 35분, 트리부번 국제공항. 보안군의 경계가 삼엄하다. 버스 창으로 보이는 시내는 비어있다. 베란다나 창문 틈 사이로 빼꼼히 거리를 내다보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이고, 무장경찰과 장갑차가 거리 곳곳에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오전 2시부터 오후 8시까지였던 통행금지령은 다시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연장됐다. 이번의 통금은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다. ‘보이는 즉시 사격할 수 있는’ 권한이 보안군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수십만명이 거리를 덮다= 오전 9시 카트만두 교외 공가부에는 벌써 수백명이 모였다. “도둑놈 국왕, 나라를 떠나라!” “민중의 힘으로 민주공화국 건설하자!” 여러 당의 깃발을 든 시위대는 구호를 외쳤다. 낮 12시30분께, 갸넨드라 국왕의 인형이 불에 타올랐다. “도둑왕, 나라를 떠나라”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카트만두 시내 칼리마티 농수산물시장의 상인들은 통금령과 도로 봉쇄 때문에 물가가 2배 이상 뛰었다고 하소연했다. <문화방송> 제공
시민들은 카트만두 진입로인 칼랑키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거리까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시위대는 길목마다 쌓아둔 폐타이어와 통나무 더미에 불을 질러 진압 보안군 차량을 막았다. 하늘엔 보안군의 헬기가 떠다녔다.

칼랑키는 이미 팽팽한 긴장에 싸여있다. 시민들은 사거리의 경찰 초소 건물에 불을 질렀다. 이어 토지등기소를 공격해, 서류와 건물 일부를 불태웠다. 구호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언제 어제처럼 총탄이 쏟아질지 두리번거리는, 불안한 긴장이 이어졌다. 거리에서 만난 운전사 수실리는 “탱크나 장갑차가 와도 이젠 국민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오후 7시께 야당에 총리임명권을 넘기겠다는 국왕의 대국민연설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됐다. 거리 곳곳에는 국왕의 발표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600㎞ 떨어진 아참에서 마오쩌둥주의 공산반군 소속 여군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공산반군은 네팔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방송> 제공
야당 대표들과 시장의 시민들= 22일 오전 네팔의회당 총재인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전 총리의 집에 7개 야당 대표들이 모였다. 회의가 열리는 동안 문 밖에선 수백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끊임없이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대표들에게 전날 국왕의 제안에 쉽게 타협해선 안 된다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구호를 연호했다. 오후 2시45분, 현관으로 나온 시타울라 네팔의회당 대변인이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의 요구를 무시한 왕의 발표는 따를 필요가 없다. 파업은 계속될 것이다.” 군중들은 환호했다. “민주주의 만세, 도둑놈 갸넨드라 물러나라.”

24일 오전, 칼리마티 농수산물 시장을 찾았다. 통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움직임들이 바쁘다. 상인들은 생활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2루피 하던 야채가 지금은 4∼5루피에 팔리고 있다.” “아침, 저녁 먹기가 힘들다.”

그러나 완두콩을 파는 롭상 남겔은 “가격이 올랐지만 나는 가장 낮은 가격에 판다.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게 민주화다. 난 장사꾼으로서 조금 마진을 붙여서 판매하고 생계를 유지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김 피디는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네팔 민주화시위를 현장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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