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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길인도의힘2부:새 ‘슈퍼파워’ 현장을 가다]
“제조업이 성장 기관차…타타가 이끈다”
100년전 벌써 8시간 노동·무상의료 실시한 타타그룹
철강 · 자동차 · IT 분야의 간판…한국 · 중국으로도 진출 전세계가 인도의 ‘정보통신(IT) 기적’에만 마음을 빼았기고 있는 사이, 인도에선 ‘제조업 발전’ 외침이 커지고 있다. 인도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년째 17%대를 맴돌고 있다. 부실한 성적표다. 공장이 늘지 않으니 고용도 제자리 걸음이다. 농촌의 빈곤을 견디지 못해 도시로 몰려드는 농민들도 ‘노동자’가 아닌 ‘도시 빈민’이 될 뿐이다. 인도 경제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다. 인도의 대표적 정보통신 기업인 인포시스의 나라야나 무르티 회장은 지난달 방갈로르에서 열린 정보·통신·기술 관련 회의에서 정보통신이 아니라 제조업 육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도가 외국 정보통신 기업뿐 아니라 제조업 기업의 현지생산 기지로 거듭나면 농촌에서 수백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제조업과 정보통신 산업의 균형잡힌 성장’을 향한 인도의 바쁜 발걸음을 상징하는 것이 인도 최대 기업인 타타그룹이다. 타타그룹은 인도 제조업의 저력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도 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잠셋지 누세르완지 타타(1839∼1904)가 1868년 설립한 타타그룹은 인도의 근대 산업화 역사 자체다. 타타는 애초 무역회사로 출발했지만 일찍부터 ‘민족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민족주의자였던 창업자의 뜻에 따라 철강과 자동차 등 제조업 발전을 주도했다. 타타스틸은 1907년 아시아 최초의 민영 종합철강회사로 출발해 연간 500만t의 철강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원가경쟁력이 가장 높은 철강기업으로도 유명하다. 타타모터스는 그룹의 주력기업으로 델리 같은 대도시부터 마하슈트라주의 시골 구석구석까지 타타의 대형트럭들이 달리는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타타모터스는 98년 첫 인도 토종차인 인디카를 내놓았으며, 국내 승용차 판매 2위를 달리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유럽과 동남아시아로도 타타 차들이 수출된다. 인도 최초의 수력발전소(1910년)와 항공사(1932년)도 모두 타타가 시작했다. 지난 4월28일 찾아간 뭄바이 중심가의 ‘타타하우스’, 인도 제조업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타타그룹의 본부가 있는 곳이다.
타타그룹의 지주회사인 타타선즈의 앨런 로슬링 전무이사는 제조업과 정보통신(IT)·서비스 분야를 아우르는 발전전략을 강조했다. “인도 경제가 계속 8∼9%씩 성장하려면 제조업이 매년 10% 이상씩 성장해야 한다. 타타그룹은 91년 인도 정부가 경제자유화 정책을 시작한 이래 정보통신·서비스 분야에서도 급성장했지만 제조업도 계속 강화하고 있다. 기술혁신으로 2천달러짜리 저가 자동차 생산 등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국내시장도 적극 개발할 것이다.” 타타그룹은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하며 21만5873명을 고용한 민간부문 최대 고용주다. 7개 분야에 걸쳐 93개 기업을 거느린 타타는 철강, 자동차, 정보통신, 에너지가 주력 분야다. 2004∼2005년 그룹의 매출 178억달러 가운데, 자동차 등 엔지니어링이 31%, 철강이 21%, 정보통신이 19%를 차지해 제조업과 정보통신의 균형이 잡혀 있다. 특히 최근 철강 분야에 큰 투자를 하고 있다. 철광석이 풍부한 인도 동부에 1200만t과 600만t, 500만t 규모의 제철소 3개를 건설해 생산능력을 크게 늘릴 계획이다. 자동차 산업에도 중점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95년에는 자체 부품기업인 타타오토컴프시스템스를 설립했다. 현재 4만명 정도의 엔지니어를 고용하고 있고 기술 분야의 채용인력도 계속 늘리고 있다. “기업이란 사회 공동체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은 사회적 지지를 끌어내며 타타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동자들에 우호적인 경영은 유명한데, 1912년 하루 8시간 노동제, 1915년 노동자 무상의료, 1920년 유급휴가를 도입했다. 영국에서 1911년에야 하루 12시간 노동제가 처음 도입된 것보다 훨씬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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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그룹의 지주회사인 타타선스의 앨런 로슬링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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