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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스물다섯인 라다씨는 곱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6개월 전 자살한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살아갈 걱정에 맘놓고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다. 두 아들 슈반(7.왼쪽) 반티(4)는 아직 어리기만 하고 빈자리를 채워야할 몫도 온전히 그녀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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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기행] 농가부채 해결 못해…지난해 농민자살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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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씨가 사는 고사라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주민들이 물을 긷고 있다. 두레박을 한참을 내려보내야 겨우 닿을 만큼 물은 부족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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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중심부 마하라슈트라주의 면화재배 지역인 비다르바의 고사라 마을, 해질녘 라다(25)는 어린 아들 슈반(7), 반티(4)을 데리고 목화밭에 섰다. 6개월 전 그의 남편 로케셸 보예르는 바로 이 밭 근처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남편이 사채업자와 친척들한테서 돈을 빌렸다. 농사가 잘 되면 갚을 거라고 했는데 목화가 다 말라죽어서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목숨을 끊었다.” 라다는 남의 농사일을 해주며 받는 하루 25~30루피(620원)로 시아버지까지 네 식구의 생계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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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끄라씨의 나이 겨우 마흔. 고된 농삿일과 힘겨운 삶의 무게가 버거운 탓인지 얼굴엔 나이보다 훨씬 더 짙은 주름살이 시름처럼 쌓였다. 그녀의 남편은 33995루피, 우리돈으로 71만 8천원의 은행빚을 갚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매어 버렸다. 살기위해 빌린 돈은 남편을 데려가 버렸고 눈앞의 우르끄라는 내내 아무런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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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라슈트라주의 면화재배 지역인 비다르바의 고사라 마을. 우르끄라씨를 뒤로 하고 마을을 벗어날 때 주민들이 아쉬운 듯 손을 흔들었다. 태양은 그들의 등 뒤로 하얀 실루엣을 만들어주었고 검게 그림자가 드리운 그들의 얼굴에서 어렴풋이 환한 미소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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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라에서 차를 타고 30분쯤 달려간 아디와씨 마을, 숨막히는 햇볕 아래 사람도 가축도 앙상하다. 작은 흙집 앞에 앉아 있던 우르꾸라(40)의 얼굴은 얘기하는 내내 아무런 표정이 없다. 그의 남편 더스루 아뜨람(54)은 보름 전 자살했다. “남편이 목화 종자값과 농약값을 대기 위해 돈을 빌렸는데 ‘빨간 곰팡이병’이 돌아 잎이 다 떨어지고 열매가 맺지 않았다. 빚 독촉이 계속되자 남편은 여기저기서 빌려 은행에 5백루피를 갚고는 사흘 뒤 밭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맸다. 정부에서 조사는 해갔는데 아무 보상도 없다. 어떻게 빚을 갚아야할지 모르겠다.” 그가 보여준 푸른색 은행 대출 서류에는 2004년에 빌린 원금 17738루피(37만4천원)에 이자 17160루피가 붙어 33995루피(71만8천원)를 갚아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가운데 5백루피를 갚았다는 빨간 쪽지도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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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끄라씨의 손과 발은 꽉 다문 그녀의 입처럼 요동이 없다. 고스란히 떠안은 빚과 살아갈 날들의 힘겨움이 그리 만들었을까.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이어만든 토담집 지붕 틈새를 비집고 뜨거운 햇빛 한줄기가 망연히 그녀를 감싸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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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다르바에선 목화 농민들의 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져가고 있다. 이 지역 농민지원단체인 ‘비다르바민중운동위원회’는 지난해 면화 수확철인 6월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 농민 470여명이 목숨을 끊었다고 집계했다. 하루 3명꼴이다. 2000년 이후 비다르바의 농민 2300명이 빚 때문에 자살했다. 이 단체 대표인 키쇼르 티와리는 “비다르바의 농민 340만명 가운데 90% 이상이 농사비용 때문에 빚을 진 채 절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한다. 수천년 동안 면화를 재배해온 이곳에서 면화는 농민들이 큰 돈을 만지게 해주는 ‘화얀 황금’이었다. 그러나, 1997년 처음으로 농민이 빚 때문에 자살했다. 티와리 대표는 90년대초 인도 정부가 농업시장을 개방하고 수입 면화와 미국산 종자가 들어오면서 악몽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인도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가입해 농업보조금을 점차 없앴는데, 엄청난 보조금을 받고 재배되는 값싼 미국산 면화가 쏟아지면서 면화값이 폭락했다. 인도 농촌엔 사회보장제도도 없고 농사를 망쳐도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농민들에겐 자살말고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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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루르 마을의 바이탈리스(뒷줄왼쪽)씨 가족. 가장을 잃은 탓인지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은 사라지고 없다. 4만루피(84만7천원)의 빚 때문에 남편이 자살한 뒤 총 일곱식구의 살림을 바이탈리스씨 혼자 떠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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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밖에 나올 기미 조차 없던 바이탈리스씨. 주고 받는 몇마디의 대화 속에서 잠시 위안이라도 되었을지...마을을 떠나는 시간 그녀는 집을 나와 골목 한켠에서 말없이 인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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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라 마을의 해질 무렵 라다씨가 아들 슈반과 반티을 데리고 자신의 밭을 둘러보고 있다. 곧 저녁을 지어 배고픈 아이들의 배를 채워주어야 하니 약간의 조급함도 있지만 내딛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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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바이탈리스가 품삯을 받을 수 있는 농사일을 구하면 밥을 먹고 일이 없으면 굶는다. 이 마을에도 200가구의 90%가 농사빚을 지고 있다. 자살은 인도 농민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고통을 드러내는 징후다. 비다르바(인도 마하라슈트라주)/<글>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사진>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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