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02 18:40
수정 : 2006.06.02 18:40
야당 “위기모면 술책 퇴진하라”
친인척 비리 파장 확산 정국 난기류 속으로
대만 정국이 격랑하고 있다. 대만 독립을 추진하던 천수이볜 총통이 친인척 비리의 덫에 걸려 ‘2선 후퇴’를 밝힘에 따라, 대만 정국은 물론 양안 관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천 총통은 31일 최근 주식 내부거래 혐의를 받는 사위 자오젠밍의 구속 등 친인척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정 권력에서 일체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국내 통치 권력을 쑤전창 행정원장(총리)에게 넘기겠다고 밝혔다. 천 총통은 이날 저녁 열린 당·정 고위층 회의에서 “모든 관련자들이 깊이 자성하고 스스로 규제하고 앞으로 철저하게 부패를 청산할 것”이라며, “헌법이 부여한 권력 이외엔 모두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당·정 간부들이 책임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 총통의 집권에 결정적 역할을 한 두 참모인 마융청 대통령 비서실 부비서장과 린몐창 국가안보회의 자문위원도 이날 나란히 사직서를 제출했다. 집권 민진당의 한 고위 인사는 “천 총통이 마 부비서장과 린 위원을 동반 사임하도록 한 것은 자신의 두 팔을 다 잘라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고 홍콩 <대공보>가 2일 보도했다.
그러나 야당은 되레 천 총통의 퇴진운동을 가속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만 독립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청색진영’으로 묶이는 대만 야당권은 천 총통의 발표 이후 일제히 “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마잉주 국민당 주석은 2일 “천 총통이 과거에 헌법을 어겨가면서 국내에서 권력을 휘둘렀음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사사로이 권력을 민진당 내부로 이양하는 것은 헌법을 다시 짓밟는 일”이라며 “이런 식의 권력 이양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대공보>는 전했다. 마 주석은 또 “천 총통은 외교에 관한 권력 행사는 이양하지 않고 유보했으나 국내에서 권위와 믿음을 상실한 총통이 어떻게 대만을 대표해 외교를 진행할 수 있겠느냐”며, 천 총통의 외교권 박탈을 주장했다. 판웨이강 국민당 입법원 단서기장(원내총무)은 “천인공노할 부패에 하늘을 찌르는 민중의 분노를 볼 때 천 총통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며 총통 퇴진 투쟁을 가속화할 것임을 내비쳤다.
지식인 사회에서도 천 총통의 이번 조처가 ‘임시방편’이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차이웨이 대만정치대학 국제관리센터 교수는 천 총통의 이번 조처가 “위기관리를 위한 예방조처”라고 지적했다. 양융밍 대만대 교수(정치학)도 “앞으로 천 총통이 진정 정치에서 손을 떼고 쑤전창 행정원장이 얼마나 독자적으로 내각을 조직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임기 만료를 2년 앞둔 천 총통이 이번 조처로 국내 통치권이 없는 명목상의 총통으로 변해 ‘집권 후기 권력 누수’(레임덕)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대만독립 추진력은 당분간 실종될 것으로 관측된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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