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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7 10:52 수정 : 2006.08.17 10:52

"몽골제국 창시자 칭기즈칸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그가 배우고 익히는데 열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과학기술과 그 인재를 적극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관영 신화통신은 16일 중국의 몽골사학 전문가인 마지(馬冀) 네이멍구(內蒙古)대학 교수가 최근 이같은 연구성과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마 교수는 "칭기즈칸 본인으로 말하자면 지식수준이 높지 않았고 따라서 아는 것도 그리 많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지식인들과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들을 매우 중시해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지방 출신이냐를 가리지 않고 대담하게 등용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서기 1214년 칭기즈칸은 대장 목화려도(木華黎挑)로 하여금 500명의 전사를 선발해 사상 최초의 몽골포병부대를 편성하고, 당시로서는 과학기술이 낙후했던 몽골제국에 비해 '선진국'이었던 금(金)나라와 서하(西夏)에서 노획한 대석포(大石砲)로 무장시켰다.

칭기즈칸은 그와 동시에 선진국에서 포로로 붙잡은 숙련 기술자들에게 이 포병부대의 기술분야 핵심업무와 교육.훈련을 맡김으로써 13세기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기술로 무장한, 강력한 포병 및 공병부대를 건립했다.

그는 정복전쟁을 통해 어느 지역을 점령하게 되면 반드시 현지의 숙련 기술자들을 포로로 붙잡아 데려갔다. 자진해서 몽골군에 투항하는 기술자들에게는 특별대우를 해주도록 하는가 하면 포로들 가운데서도 일일이 기술자들을 가려냈다.

이렇듯 다민족 전사들로 편성한 포병, 공병 등 첨단기술부대와 선진적인 무기 덕분에 칭기즈칸의 몽골군대는 무수한 과학기술 및 문화 발달지역의 견고한 도시와 성채 등을 공격해 점령할 수 있었다는 것이 마 교수의 연구 결과다.

마 교수는 칭기즈칸이 흡수한 세계 선진 과학기술로 인해 몽골 민족의 과학기술 수준도 간접적으로 제고됐다면서 당시 몽골초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무기 및 장비. 차량, 수공예제품 등을 제조할 수 있었고 가장 선진적인 교량과 가장 선진적인 도시도 건설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칭기즈칸은 20여년 간에 걸친 정복전쟁으로 아시아와 유럽 각지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으나, 전무후무한 대제국을 건설해 비단길을 다시 통하게 하고 마르코 폴로와 그리스도교 선교사들로 하여금 아시아를 왕래하게 하는 등 동서양의 문화교류를 가능하게 해 이것은 큰 업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돈관 특파원 don@yna.co.kr (베이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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