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19 15:03
수정 : 2006.11.19 15:17
린(20)과 장(21)은 친구다. 둘다 하노이대 영어학과 3학년생이다. 18~19일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 자원활동요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통역 및 외국인 참석자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일을 맡고 있다. 둘은 하노이대에서만 300여명의 학생이 자원활동요원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아펙 정상회의가 베트남 사람들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대답이 사려깊고 당돌하다. “아펙 정상회의는 베트남이 세계경제와 만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베트남은 이번 행사를 열심히 준비했고, 결과가 좋기를 바라죠. 베트남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요. 이번 행사가 베트남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세계적인 행사에 함께 하게 돼 기쁘고 즐거워요”(린). “이번 행사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왔어요. 아저씨같은 한국 기자를 비롯해 외국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베트남에 도움이 되고 싶기도 하고요”(장).
린과 장, 둘다 미국과 베트남의 오랜 전쟁이 끝난 뒤에 태어난 ‘신세대’다. 좀 짓굿은 질문을 했다. ‘베트남은 미국과 오랜 세월 전쟁을 했다. 베트남은 미국과 1995년 수교했고, 이번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왔다. 미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역시 답변이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사려깊다. “미국은 베트남에 중요한 나라라고 생각해요. 전쟁은 오래 전 일이잖아요. 미국은 베트남에 세계의 많은 친구 가운데 하나예요. 전 미국에 가보고 싶어요. 싱가포르나 영국보다 미국에 가는 게 세계 공통어인 영어를 좀더 정확하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린). “전쟁은 오래 전 일이잖아요.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가 좋으니, 미국은 우리의 친구라고 생각해요”(장).
이런, 이건 거의 베트남 정부 고위 인사를 인터뷰하는 기분이다. 전혀 다른 내용의 질문을 던졌다. ‘베트남에서 한국 대중스타들이 인기가 높다는데, 누구 좋아하나?’ 린과 장의 얼굴에 살포시 웃음이 번진다. “전 비를 좋아해요. 한국의 패션과 드라마에도 관심이 많아요. 한국어도 배우려고 했는데, 진도가 맞지 않아 일단 포기했어요”(린). “전 장나라를 좋아해요”(장). 린은 “어머니가 하노이에 있는 한국기업에서 일하는데, 저도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다시 어려운 질문. ‘호치민 선생을 어떻게 생각하나?’ 린은 “학교에서 배웠어요”라고는 별 말이 없다. 장은 좀 길게 답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한테 많은 얘기를 들었어요. ‘호 아저씨’(bac Ho)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분 덕에 지금의 베트남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 ‘호 아저씨’를 존경해요.”
다시 좀더 난해한 질문. ‘최근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들어본 적은 있나? 어떻게 생각하나?’ 둘다 한참 골똘히 생각하는 분위기다. 린이 먼저 입을 연다. “언론 보도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는 알아요. 하지만 북한이 왜 핵실험을 했는지,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 역사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뭐라 말하기 어려워요.” 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우리처럼 어린 사람이 대답하기엔 너무 큰 문제”라며 “판단하기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다시 개인적인 질문. ‘왜 하필 영어과에 들어갔나?’ 둘다 멋진 답을 했다. “영어는 세계공용어라고 생각해요. 전 졸업한 뒤에 정치·경제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번역가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베트남을 세계에 소개하고, 세상 소식도 베트남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어요”(린). “어머니가 의사신데, 8살 때부터 집에서 어머니한테 영어를 배웠어요.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유니세프나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일하고 싶어요”(장).
대화를 마치고, ‘혹 한국에 올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자, 둘이 맞장구를 쳤다. “한국 가면 연락드릴 게요. 기자 아저씨, 하노이에 다시 오시면 연락하세요. 하노이 관광 안내해드릴 게요.”
하노이/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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