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1.19 15:06 수정 : 2006.11.19 18:24

아펙 정상회의 열린 베트남 하노이

18~19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가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의 검문검색은 삼엄했다. 군인들이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대표단 숙소와 회의장 주변을 봉쇄하고 경계를 서기도 했다. 15일 3자 또는 양자 협의에 나선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와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등도 다른 이들과 똑같이 검문검색을 받았다. 미국 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미국보다 더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검색 요원들이 위압적이거나 표정이 굳어있지는 않았다. 한 검색 요원은 “이번 행사가 베트남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베트남 건국 이래 큰 행사” 하노이 아펙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팜자키엠(62)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은 “이번 아펙 행사는 수천년에 걸친 베트남의 역사와 개혁·개방정책 ‘도이모이’ 20년의 성과를 세계의 친구들에게 소개할 절호의 기회”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그럴만도 하다. 아펙 회원국은 베트남 외국인 투자액의 75%, 공적개발원조(ODA)의 50%, 수입의 79%, 수출의 73%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팜자키엠 장관의 설명이다. 더욱이 베트남은 지난 7일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총회에서 15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을 승인받은 터다. 베트남은 2008~09년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도 입후보한 상태다. 주베트남대사관 배재현 공사는 “미국·중국·러시아 대통령은 아펙 참가와 함께 베트남을 공식방문했다”며 “베트남의 오랜 서방진출 노력이 최고의 성과와 함께 한 매듭을 짓는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8.4%라는 사상 최고의 경제성장을 기록한 베트남은 90년대 이후 연평균 7.6%라는 고도성장의 기세를 몰아, 2010년에는 국내총생산(GDP) 940~980억 달러로 2000년의 2.1배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은 △고도성장을 지탱할 인프라 시설 부족 △부패와 관료주의 행태 △법체제 미비 △투자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민간저축 부족 및 자본시장 미발달 △개별 기업 및 산업별 경쟁력 취약 △인플레이션 현상 등을 ‘베트남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꼽았다.

크게 보면, 국제수준의 경쟁력 확보와 부패 극복이다. 익명을 요구한 하노이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월급 50달러에 불과한 정부 관리가, 호떠이(西湖) 주변의 대형 벽걸이 텔레비전이 있는 호화주택에서 산다”며 “뒷돈 없이는 사업이 어려운 나라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직접투자 누계 총액은 지난해 기준으로 505억 달러인데, 대만(79.32억 달러), 싱가포르(75.99억 달러), 일본(61.94억 달러), 한국(52.79억 달러), 홍콩(36.97억 달러)이 총투자액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꾸준히 늘고 있지만 편중현상이 심하다. 때문에 아펙 정상회의 개최는 더 많은 나라의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려는 베트남엔 중요한 계기다.

이런 탓인지 아펙 정상회의를 대하는 베트남의 분위기는 1988년 올림픽을 치르던 한국의 태도를 연상케 한다. 아펙 행사 진행요원을 자원한 하노이대 영어학과 3학년생인 린(20)은 “아펙은 베트남이 세계경제와 만나는 좋은 기회”라며 “베트남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노이대에서만 300명 정도가 자원활동요원으로 참여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배재현 공사는 “베트남은 정치가 안정되고 자원이 풍부한 점 등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원동원에 문제가 없다”며 “베트남의 고도성장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도이 모이’의 깃발 아래, 세계로 내딛는 베트남 인민의 발걸음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호치민과 멀티플렉스 지난 여름 대형백화점 ‘빈꼼 타워’ 6층에 들어선 ‘메가 스타’라는 멀티플레스 영화관은 세계로 창을 연 베트남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 하노이에서 일하고 있는 웹디자이너 신연희씨는 “하노이 영화관에선 한명의 변사가 모든 등장인물의 대사를 베트남말로 들려준다”며 “메가 스타는 원음을 훼손하지 않고 자막처리된 외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관”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일반 영화관보다 요금이 세배 정도 비싸지만, 개관작인 <미션 임파서블Ⅲ>를 비롯해 여러편을 봤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돈벌이’에만 목을 매고 밖으로만 눈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하노이에 있는 ‘호치민 묘소’는 지금도 유리관 속에 안치된 그를 보려는 베트남인들로 인산인해다.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하노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고은(24)씨는 “베트남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호 아저씨’라는 뜻의 애칭인 ‘박 호’(bac Ho)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며 “아마도 베트남 사람들은 호 아저씨를 영원히 존경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니세프나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일하고 싶다는 아펙 정상회의 자원활동요원 장(21, 하노이대 영어과 3학년)은 “호 아저씨를 만난 적은 없지만 아버지한테 말씀을 많이 들었다”며 “호 아저씨 덕분에 오늘의 베트남이 있다고 생각해 그분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호 아저씨’와 멀티플렉스는 베트남 사람들이 ‘독립·주권존중·평화’, ‘다양화·다변화’라는 대외정책의 두 기둥을 함께 끌어안고 가려고 애쓰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베트남·북한 그리고 미국 베트남을 보며 북한을 생각한다. 둘을 닮은 점이 많다. 아시아에서 미국과 직접 전쟁을 치른 두 나라이자,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의 현재 모습은 너무 다르다. 베트남은 오랜 노력 끝에 1995년 미국과 수교했고, 미국을 자국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개척했다. 반면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세기를 넘기도록 미국과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고,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베트남과 북한의 공통점은 이제 더이상 없는 것일까? 짐 리치 미국 하원 동아태소위 위원장은 지난해 8월말 북한을 방문했을 때를 비롯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과 북한 모두에 양국의 오랜 갈등을 풀 선행 사례로 ‘베트남 모델’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이렇게 말해왔다고 한다. “미국과 베트남은 처절한 전쟁을 치렀지만 정권교체 없이도 친구가 됐다. 사람들은 남북관계와 북한문제를 거론할 때 독일 사례를 많이 얘기하는데 나는 북한에도 베트남 사례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미국-베트남 관계는 북-미 관계의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노이/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