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03 19:29
수정 : 2007.06.03 22:14
협력틀 필요하나 ‘지뢰밭’
3일 제주에서 열린 한국·중국·일본 3국 외교장관 회의는 협의 내용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3국 외교장관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 정상회의’ 때 이뤄진 3자 위원회 회의 등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셋만 따로 모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3자 차원의 협력을 모색하는 역사적 첫 걸음인 셈이다.
이 회의 성사를 주도한 정부의 꿈은 원대하다. 심윤조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지난달 31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동북아시아의 바람직한 장래를 위해 평화·안정·공동번영의 틀을 만들어간다는 인식 아래 함께 협의하고 협력하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3자 차원의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 비전이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이날 회의 뒤 한발 더 나아가 “실질 협의의 관행을 쌓아나가면 6자 회담 9·19 공동성명 등에 명시된 역내 다자안보회담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3국 외교장관회의의 앞길은 말 그대로 지뢰밭이다. 한-중-일 3국은 과거사와 해양경계 문제 등에서 한치 양보 없는 대립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핵 문제 및 미-일 동맹을 핵심 축으로 한 일본의 전략 등 복잡한 역내 안보 지형도 협력 강화의 장애물이다. 때문에 유럽연합이나 아세안 등 세계 각지에 흔한 지역협력 틀이 동북아엔 아직 없다. 이렇듯 3자 협력은커녕 전면적인 양자 협력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중-일 외교장관들이 이날 3자 차원의 첫 회의에서 문화 부문 교류 확대, 3국 주요 도시 항공편 셔틀, 환경 문제 등 ‘비정치적 의제’를 중심으로 구체적 협력 사업을 찾아낸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3국 외교장관들은 이날 회의에서 북핵 등 동북아 정세와 관련해 안보 전략적 문제도 논의했으나, 과거사나 해양경계 문제 등 양자 차원의 예민한 쟁점은 일단 우회했다.
그러나 3국 간 협력틀을 만들 필요성과 협력의 잠재력은 상당하다. 3국은 동아시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3국은 세계 인구의 23%로 4분의 1에 육박하고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에 가까운 18%에 이른다. 세계 교역량의 17%가 3국을 발판으로 한다. 지난해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이 400만명을 넘는 등 3국 간 양자 차원의 인적 교류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외교는 스타일이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며 “첫술에 배부르길 바라는 게 과욕”이라고 지적했다. ‘형식’의 변화가 ‘내용’의 발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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