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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반환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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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반환 10년 (상) 절반의 성공
7월1일은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1997년 이날 새벽 보무도 당당하게 국경을 넘어 홍콩을 접수했다. 얼마 뒤 영국 왕실 전용 요트 브리태니아가 마지막 홍콩 총독 크리스 패튼을 태우고 느릿느릿 홍콩을 빠져나갔다. 156년에 걸친 홍콩의 식민지 역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날은 홍콩 사람들에게 경축일만은 아니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홍콩 거리엔 민주화를 요구하는 구호가 울려퍼진다. 반환 직후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공습을 뚫고 부활한 경제도시 홍콩의 정치적 갈증을 대변하는 아우성이다. 무엇이 홍콩의 이런 이중성을 낳은 것일까?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역사적 실험을 치르고 있는 열살배기 홍콩의 모습을 찾아가본다. 시장경제 불안 씻었지만 자치권 위협 증폭중앙정부 향한 불만 정치집회 증가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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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제는 중국 반환 이후에도 번창하고 있다. 14일 저녁 홍콩 유흥가인 완차이로 통하는 거리가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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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선 해마다 1천건 이상의 대중집회나 거리행진이 벌어진다. <워싱턴포스트>가 한때 홍콩을 시위의 도시라고 명명했을 정도로 정치적 압력이 높다. 특히 2003년 7월1일 50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이후, 이날은 홍콩이 중국에 민주화 독촉장을 날리는 날로 자리잡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이번 반환 10돌 기념일에도 직선제를 요구하는 거리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중국은 이런 정치적 긴장을 경제적 당근을 통해 완화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2003년 홍콩과 경제긴밀 협정을 맺어 중국 본토로 수출하는 홍콩산 제품에 대한 무관세 혜택을 확대했다. 지난해 1월부터는 홍콩의 모든 업종이 무관세로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홍콩을 경제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정치적 저항을 상쇄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일국양제는 현재 이런 경제적 통합이 주는 상업적 이익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 실제 주머니가 두둑해지면서 홍콩인의 정치적 무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반환 직후 치솟았던 민주당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다. 장융렁 광둥성 미국상회 회원사무위원회 부주석은 “홍콩은 변함없이 번창하고 있고, 시장경제에 대한 외부의 위협도 미약하다”며 “중국은 홍콩의 자본주의를 50년 동안 보장한다는 기본법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과 홍콩의 경제적 통합이 정체성의 일체감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홍콩 중문대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21.5%는 자신을 ‘홍콩인’으로, 18.6%는 ‘중국인’으로 여겼다. ‘홍콩인이지만 중국인이기도 하다’는 답변은 38.1%, ‘중국인이지만 홍콩인이기도 하다’는 응답은 21.2%로 나타났다. 이중적 정체성을 보인 답변이 60%에 가깝다. 이는 1996년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홍콩/글·사진 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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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주민들의 정부 신뢰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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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장관 등 직선제 확대 ‘논란의 핵’
사법부 독립·언론 자유도 입길 올라 홍콩은 중국과 달리 비교적 높은 수준의 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돼 있고, 노동조합은 파업의 권리를 행사한다. 이는 홍콩 반환을 앞두고 중국과 영국이 합의한 홍콩기본법에 보장돼 있는 홍콩 주민들의 권리이다. 일국양제는 이런 홍콩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는 조건에서만 성립한다. 그러나 홍콩 주권이 중국에 넘어간 이후 홍콩의 정치적 권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홍콩 정부는 1999년 1월 중국 본토 주민 가운데 부모가 한쪽만 홍콩 주민이어도 홍콩 거주를 허용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중국 정부의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6개월마다 홍콩 관찰보고서를 내는 영국 외무성은 최근 이를 홍콩의 사법적 독립을 저해하는 본보기로 거론했다. 홍콩의 언론 역시 친중국계 언론의 도전에 부닥쳐 있다. 중국에 비판적 견해를 보이는 〈빈과일보〉 지미 라이 사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중국 당국의 눈치를 보는 광고주들이 광고를 기피하는 바람에 연간 2억홍콩달러(약 237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우리는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근처 광둥성에선 여전히 홍콩 일부 언론의 유통을 통제하고 있다. 직선제는 홍콩의 정치적 권리가 확장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홍콩의 직선제 논쟁은 1991년 입법회 60석 가운데 18석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정치개혁을 단행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현재 입법회 60석 가운데 30석은 지역 직선으로, 30석은 직능 간선으로 뽑고 있다.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은 친중국계를 주축으로 구성된 800명 규모의 선거위원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지난 3월 행정장관 선거에서 처음으로 경선이 치러진 것이 그마나 진전이다. 한편에선 중국이 홍콩 민주화의 속도를 일부러 늦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지막 홍콩 총독을 지낸 크리스 패튼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영국이 홍콩의 민주화를 너무 늦게 시작한 점을 인정하면서 중국이 홍콩의 민주화 이행을 지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콩/유강문 특파원
크리스 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대기자
“홍콩인 60% 전면적 보통선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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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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