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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8 19:06 수정 : 2007.06.18 23:06

홍콩 반환 10년

홍콩 반환 10년 (상) 절반의 성공

7월1일은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1997년 이날 새벽 보무도 당당하게 국경을 넘어 홍콩을 접수했다. 얼마 뒤 영국 왕실 전용 요트 브리태니아가 마지막 홍콩 총독 크리스 패튼을 태우고 느릿느릿 홍콩을 빠져나갔다. 156년에 걸친 홍콩의 식민지 역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날은 홍콩 사람들에게 경축일만은 아니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홍콩 거리엔 민주화를 요구하는 구호가 울려퍼진다. 반환 직후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공습을 뚫고 부활한 경제도시 홍콩의 정치적 갈증을 대변하는 아우성이다. 무엇이 홍콩의 이런 이중성을 낳은 것일까?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역사적 실험을 치르고 있는 열살배기 홍콩의 모습을 찾아가본다.

시장경제 불안 씻었지만 자치권 위협 증폭
중앙정부 향한 불만 정치집회 증가 이어져

홍콩 경제는 중국 반환 이후에도 번창하고 있다. 14일 저녁 홍콩 유흥가인 완차이로 통하는 거리가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15일 오전 홍콩대 교정에 반짝 햇빛이 비쳤다. 이달 들어 우기가 시작한 홍콩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맑은 날씨다. 도서관 앞에 서 있는 게시판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민주의 벽’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게 정치적 요구를 내거는 게시판인 듯싶다. 과연 ‘홍콩의 민심은 승리했는가’란 제목의 글을 보니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파의 나태함을 질타하는 내용이다.

홍콩 젊은이들은 대체로 중국의 홍콩 지배에 부정적이다. 비록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민주주의의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중국의 공산당 일당 독재가 달가울 리 없다. 일본에서 유학왔다는 한 학생은 “홍콩 친구들이 대부분 중국을 정치적 후진국으로 얕잡아 본다”고 말했다. 홍콩과 중국의 일체감을 강조하는 중국의 태도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들에게 중국과 홍콩은 여전히 다른 나라다.

일국양제는 홍콩의 민주화가 늦춰지면서 도전받고 있다. 대부분 홍콩 주민은 좀더 많은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를 보면, 홍콩 주민의 60%가 되도록 빨리 직선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우방궈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은 최근 홍콩 기본법 시행 10돌 기념 좌담회에서 “홍콩 정부의 모든 권력은 중앙정부에서 나온다”며 홍콩의 자치에 한계가 있음을 거듭 확인했다.

이런 부조화는 일국양제가 신뢰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옌쉬예통 칭화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홍콩은 중국에 명목상으론 반환됐지만, 사실상으론 그렇지 못하다”며 “홍콩은 아직도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홍콩이 ‘일국’이 되지 못하고 ‘양제’로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반환 직전 중국에 ‘체제의 지속’을 요구했던 홍콩은 이젠 ‘체제의 변화’를 바라고 있다. 특히 민주화를 꿈꾸는 이들은 ‘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는 기본법의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적용을 요구한다. 그러나 중국은 본토의 13억 인구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권리를 홍콩에만 허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홍콩의 민주화가 자칫 대륙으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정치적 방어심리가 깔려 있다.


홍콩에선 해마다 1천건 이상의 대중집회나 거리행진이 벌어진다. <워싱턴포스트>가 한때 홍콩을 시위의 도시라고 명명했을 정도로 정치적 압력이 높다. 특히 2003년 7월1일 50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이후, 이날은 홍콩이 중국에 민주화 독촉장을 날리는 날로 자리잡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이번 반환 10돌 기념일에도 직선제를 요구하는 거리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중국은 이런 정치적 긴장을 경제적 당근을 통해 완화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2003년 홍콩과 경제긴밀 협정을 맺어 중국 본토로 수출하는 홍콩산 제품에 대한 무관세 혜택을 확대했다. 지난해 1월부터는 홍콩의 모든 업종이 무관세로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홍콩을 경제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정치적 저항을 상쇄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일국양제는 현재 이런 경제적 통합이 주는 상업적 이익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 실제 주머니가 두둑해지면서 홍콩인의 정치적 무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반환 직후 치솟았던 민주당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다. 장융렁 광둥성 미국상회 회원사무위원회 부주석은 “홍콩은 변함없이 번창하고 있고, 시장경제에 대한 외부의 위협도 미약하다”며 “중국은 홍콩의 자본주의를 50년 동안 보장한다는 기본법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과 홍콩의 경제적 통합이 정체성의 일체감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홍콩 중문대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21.5%는 자신을 ‘홍콩인’으로, 18.6%는 ‘중국인’으로 여겼다. ‘홍콩인이지만 중국인이기도 하다’는 답변은 38.1%, ‘중국인이지만 홍콩인이기도 하다’는 응답은 21.2%로 나타났다. 이중적 정체성을 보인 답변이 60%에 가깝다. 이는 1996년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홍콩/글·사진 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홍콩 주민들의 정부 신뢰도 변화

행정장관 등 직선제 확대 ‘논란의 핵’
사법부 독립·언론 자유도 입길 올라

홍콩은 중국과 달리 비교적 높은 수준의 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돼 있고, 노동조합은 파업의 권리를 행사한다. 이는 홍콩 반환을 앞두고 중국과 영국이 합의한 홍콩기본법에 보장돼 있는 홍콩 주민들의 권리이다. 일국양제는 이런 홍콩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는 조건에서만 성립한다.

그러나 홍콩 주권이 중국에 넘어간 이후 홍콩의 정치적 권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홍콩 정부는 1999년 1월 중국 본토 주민 가운데 부모가 한쪽만 홍콩 주민이어도 홍콩 거주를 허용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중국 정부의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6개월마다 홍콩 관찰보고서를 내는 영국 외무성은 최근 이를 홍콩의 사법적 독립을 저해하는 본보기로 거론했다.

홍콩의 언론 역시 친중국계 언론의 도전에 부닥쳐 있다. 중국에 비판적 견해를 보이는 〈빈과일보〉 지미 라이 사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중국 당국의 눈치를 보는 광고주들이 광고를 기피하는 바람에 연간 2억홍콩달러(약 237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우리는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근처 광둥성에선 여전히 홍콩 일부 언론의 유통을 통제하고 있다. 직선제는 홍콩의 정치적 권리가 확장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홍콩의 직선제 논쟁은 1991년 입법회 60석 가운데 18석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정치개혁을 단행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현재 입법회 60석 가운데 30석은 지역 직선으로, 30석은 직능 간선으로 뽑고 있다.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은 친중국계를 주축으로 구성된 800명 규모의 선거위원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지난 3월 행정장관 선거에서 처음으로 경선이 치러진 것이 그마나 진전이다.

한편에선 중국이 홍콩 민주화의 속도를 일부러 늦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지막 홍콩 총독을 지낸 크리스 패튼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영국이 홍콩의 민주화를 너무 늦게 시작한 점을 인정하면서 중국이 홍콩의 민주화 이행을 지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콩/유강문 특파원


크리스 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대기자
“홍콩인 60% 전면적 보통선거 원해”

크리스 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대기자
크리스 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대기자는 “홍콩인은 홍콩의 제도를 대륙으로 더 확대하길 바라고, 그게 안 되면 홍콩이라도 자체적인 제도를 갖기 원한다”며 “홍콩의 제도가 퇴보하는 상황을 홍콩인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밥티스트대를 나와 1984년부터 기자 생활을 해온 그는 오랫동안 홍콩 정치를 관찰해온 전문가로 통한다.

-홍콩이 요구하는 민주화는 무엇인가?

=중국은 홍콩을 넘겨받으면서 홍콩인이 홍콩을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회수하는 주요한 담보였다.

-홍콩의 완전한 직선제에 시간표가 있는가?

=기본법은 1997~2007년의 선거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후 이를 어떻게 수정할지, 수정하지 말지도 그 안에 있다. 홍콩인 60%는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전면적 보통선거를 실시할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언제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보통선거가 홍콩을 불안정하게 만들까 우려하고 있다.

-2012년 전면적 보통선거가 가능한가?

=그 가능성은 작다. 중국은 홍콩에서 전면적인 보통선거를 실시하는 데 유보적이다. 홍콩 안에서도 영향력이 큰 경제계는 비교적 보수적이다. 중국이 이들의 의견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움직일 리는 없다. 중국의 인민대표 선거방식은 홍콩인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홍콩인의 불만이 2003년처럼 폭발할 수 있는가?

=당시 시위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된 것이다. 둥젠화 정부의 실정과 경기 침체, 사스 피해 등으로 홍콩은 매우 큰 손실을 봤다. 이럴 때 중국이 국가안전법 입법을 들고 나왔다. 이런 요소들이 집중돼 폭발한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다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홍콩 안에서 모순이 생길 것이다.

홍콩/유강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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