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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쿠데타 당시, 태국 군인들이 방콕 시내 정부청사 부근에 멈춰선 탱크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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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19일로 1년이 됐으나 여전히 군부가 국정을 장악하고 있어 민주체제 복귀 전망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쿠데타 주역인 손티 분야랏끌린 장군은 쿠데타 직후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며 국가 안정과 단합,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아직도 전국 절반은 계엄령 상태에 놓여 있고 양극화 현상은 오히려 심화했을 뿐 아니라 남부지역 이슬람 과격파의 준동으로 국가안정이 흔들려 민주주의 복귀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 계엄령 존속 = 태국 군부는 작년 9월19일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전국 76개 주(州)에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지난 1월26일 방콕을 포함한 중부지방 41개 주의 계엄령은 해제했으나 탁신 치나왓 전(前) 총리의 지지기반이 강한 북부지방과 이슬람 무장세력의 폭력사태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남부지방 등 나머지 35개 주에서는 사회 불안을 이유로 계엄령을 해제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군부와 과도정부는 이들 지역에 대한 계엄령을 풀지 않고 연말로 예정된 총선을 치를 방침이어서 정당과 학계, 국제사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탁신 전 총리가 창당했다가 해체된 '타이 락 타이'(TRT)의 후신인 '국민의 힘'당(PPP), 민주당 등 주요 정당과 반(反) 군부 단체인 민중민주주의운동(CFPD)도 총선일이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최종 승인을 받아 확정되는 즉시 계엄령을 해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정당과 단체는 "전국의 절반이 아직도 계엄령 하에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태국이 민주주의로 복귀할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계와 미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 등도 지난달 조속한 계엄령 해제를 태국 군부와 과도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와 과도정부는 계엄령이 국민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고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총선 전에 계엄령을 풀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 양극화 심화 = 탁신의 부정부패 의혹과 대중영합주의에 신물이 난 태국의 중산층은 그를 축출한 군부 쿠데타를 환영하는 반면 도시 노동자와 농민은 아직도 탁신에 대해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어 양극화 현상은 오히려 심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양극화 현상은 최근 실시한 신헌법 찬반 국민투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태국 군부는 쿠데타 직후 1997년 제정 헌법을 폐지하고 신헌법 초안을 작성, 쿠데타 발생 11개월만인 8월19일에 신헌법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며 57.6%의 낮은 투표율을 보인 끝에 찬성 57.8%, 반대 42.1%로 국민투표를 겨우 통과했다.
탁신의 고향이며 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치앙마이주(州) 등 북부 지역은 오히려 반대가 찬성 비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번 국민투표는 그 내용보다는 군부 쿠데타에 대한 국민의 신임 여부를 묻는 성격을 지니고 있어 국내외의 관심을 끌어왔다.
정치 전문가들은 국민투표에서 예상보다 낮은 투표율을 보이고 찬성표 역시 반대표와 근소한 차이가 난 것은 양극화 현상이 쿠데타 이전보다 심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태국 국민이 군부와 과도정부가 조속한 시일 내에 쿠데타 정국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회복하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쭐라롱콘 대학의 파니탄 와타나야곤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태국 국민이 찬성표를 던진 것은 군부가 약속한 대로 연말에 총선을 실시하라는 명확한 메시지"라며 "국민은 예정대로 총선을 실시해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라는 뜻을 쿠데타 세력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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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군인들이 방콕 시내 정부청사 부근에서 군용차량을 타고 가고 있다(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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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불안 = 쿠데타의 주역 손티 장군은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이슬람 교도로서는 처음으로 군수뇌부에 오른 인물로 그동안 태국 남부 이슬람 우세지역의 소요사태를 대화로 해결하자고 주장해왔으나 탁신 총리로부터 번번이 거절당했었다.
이런 손티 장군이 성공적으로 무혈쿠데타를 이끌자 태국 국민은 이슬람 우세지역인 남부지역의 소요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폭력사태는 오히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접경 파타니.얄라.송클라 등 남부 3개 주는 인구 200만명 가운데 80%가 이슬람 교도와 말레이족으로 구성돼 있으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무장세력의 폭력사태가 연일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격파들은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불교도 뿐 아니라 정부에 협력하는 마을 지도자, 관리 등 온건파 무슬림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특히 불교 문화를 강요하고 있다는 이유로 학교 건물과 교사들이 이슬람 과격파의 주된 공격 대상이 되면서 지금까지 학교 170여곳이 방화로 부분 또는 전체가 소실됐으며, 교사와 교육청 직원 등 70여명이 살해됐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HRW)는 지난달말에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1월부터 금년 7월까지 이슬람 분리주의 무장세력은 시민에 대해 3천건, 군인과 경찰에 대해서는 각각 500건 이상의 공격을 자행한 것으로 집계됐다.
HRW는 이 같은 폭력 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2천400명, 부상자는 4천여명인데 이들 사상자의 90%는 무고한 시민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 민주체제 복귀 불투명 = 손티 장군이 쿠데타 당시 공언과는 달리 정치에 입문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으면서 군이 총선 이후에도 정치에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손티 장군은 자신의 정계입문설이 정가에 회자되자 지난달 6일 성명을 통해 "민주주의는 누구는 선거에 나설 수 있고, 누구는 안된다고 규정하지 않는다"며 "선거는 누구나 나설 수 있지만 선택의 권리는 국민에게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년말로 예정된 차기 총선의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 채 "나중에 밝히겠다"고 말했다.
분랏 솜타스 국방장관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손티 장군이 총리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수라윳 쭐라논 과도정부 총리는 손티 장군의 정계입문은 본인의 권리이며, 선택은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그를 옹호하고 있다.
손티 장군은 만 60세가 되는 9월30일에 정년퇴임할 예정이다. 그는 퇴역해도 국가최고권력기관인 '국가안보평의회'(CNS)의 의장직은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손티 장군은 쿠데타를 일으켜 탁신 치나왓 총리를 축출하면서 금년 10월에 총선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며, 자신은 총선과 함께 군에서도 은퇴해 권력을 유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었다.
태국 총선은 쿠데타 당시 약속보다 다소 늦어져 12월23일에 치러질 예정이다.
태국 국립대인 쭐라롱콘 대학의 티티난 퐁수디락 정치학 교수는 최근 AFP 통신과 인터뷰를 통해 "쿠데타 발생 1년 후 정국이 당초 기대했던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있다"며 "군부는 할 일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권좌에 더 오랜 기간 머물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방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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