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홧발에 숨죽인 거리 ‘누가 나서면 나도…’

군사정권의 무력 유혈 진압으로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1일 오전 양곤 술레탑 거리에서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오가는 시민들을 검문하고 있다. 양곤/이정용 기자 [e-mail]

도로 곳곳 삼엄한 경계로 집회 ‘원천봉쇄’
‘시위 불씨 살리기’ 안간힘…재궐기 가능성도

지난주 절정으로 치달았던 시위가 잦아들면서 민주화 요구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거리는 겉으로는 일상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마구 풀어놓은 군·경은 곳곳에서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고, 민주화 세력에선 20년 만에 맞이한 민주화 항쟁의 불씨를 살려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어 긴장이 팽배하다.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함성이 가득했던 술레탑로를 비롯한 양곤의 주요 거리들은 1일 출근길에 오른 시민과 차량 행렬로 붐볐다. 시장 상인들은 일찍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양곤의 상징인 슈웨다곤탑을 둘러싼 바리케이드는 이날 오후 치워졌다. 군사정부는 ‘상황 종료’를 선언한 뒤에도 주요 도로에 배치한 병력을 철수시키지는 않았다. 무장 군인들을 태운 트럭들도 도로를 오가며 순찰을 계속했다.

양곤 시민들 사이에서는 한때 ‘월요일이면 다시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올 것’이라는 말도 돌았지만, 군이 장악한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시민은 “어제 외곽에서 작은 집회가 시작됐지만 군인들의 진압으로 10분 만에 끝났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현지 신문에는 ‘사회 전복 세력’이라는 설명과 함께 붙잡힌 대학생들의 모습이 실렸다.

감바리 유엔특사의 방문 소식을 접한 일부 시민들은 군사정권에 양보를 비롯한 별다른 성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지 않자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했다는 시민은 “지난주와 같은 대규모 시위가 다시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지의 한 소식통은 민주화 운동 진영에서는 싸움을 이어갈 것인지 또는 훗날을 도모할지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도부 대부분이 검거되거나 피신한 상태에서 시위의 불씨를 살리기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일단 양곤을 벗어나자는 주장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얻은 것 없이 기회를 놓치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1988년 8월을 되살리려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 세력의 시도는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오랜 독재에 대한 염증에다 물가폭 등으로 높아진 불만을 정권이 달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재궐기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현지 동포는 “정부의 강도 높은 진압 때문에 사람들이 섣불리 나서려 하지는 않지만, 주변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나서면 나도 나서겠다’는 말들을 한다”고 말했다. 양곤/이본영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