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편수 줄이자 장성 부인들 항의해 원위치"
민주화는 대세…경제적 잠재가치에 주목할 시점
"미얀마는 같은 폐쇄국가라도 북한과 다릅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TV를 통해 한국드라마를 거의 매일 접하고 있습니다. 버마식 사회주의로 가난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들의 머리는 이미 시장경제화됐습니다"
양곤에 7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 교민이 군사정권의 유혈진압으로 시위사태가 일단락되긴 했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수년내에 미얀마가 민주화와 시장경제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마르크시즘과 불교가 결합된 버마식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가난으로 고통받는 현세를 인내하고 내세의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며 묵묵히 살아왔다.
하지만 군사정권의 폭정과 서민의 빈곤이 한계점을 넘어서자 1988년 민주항쟁 이후 19년만에 민주화 시위가 다시 폭발했다.
시위는 지난달 중순 군정이 가솔린과 디젤, 차량용 천연가스(CNG) 등을 2∼5배 인상한 조치가 직접적 도화선이 됐지만 미얀마 시민들이 즐겨보는 한국 드라마도 하나의 간접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영방송인 MRTV의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한국드라마는 수년 전부터 미얀마 사람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방영빈도가 꾸준히 늘어나자 군정이 최근 방영편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군장성 부인들이 이에 항의하는 바람에 2주만에 원위치됐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다. 미얀마 서민들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시장경제의 풍요와 낭만적인 삶을 대리 체험했고 잠재의식 속에서 현세의 변화를 꿈꾸게 된 것이다. 서구화된 젊은 층은 허리 아래를 두르는 전통의상인 `론지'를 잘 입지 않는다. 양곤시내 깐도지 호수공원 등지에서는 연인들이 벤치에 나란히 앉거나 팔짱을 낀 채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흔하게 목격된다. 드라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미얀마에서는 한국이 1순위 우호국이다. 미얀마 최대의 상업도시 양곤에서는 서투른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과 종종 마주친다. 10년 전 한국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미얀마에서 호프집을 차린 테 쉐(42)씨는 "미얀마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다 좋아해요"라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군정 최고실권자인 탄 쉐 장군도 미얀마에 진출한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 회장을 '내 친구(my friend)'라고 호칭할 정도로 한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등 한국에 대해 우호적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사람들은 한국이 극빈국에서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사실을 동경하고 있다. 한국이 오랜 식민지배와 군사독재를 거쳤다는 점에서 묘한 동질감도 갖고 있다. 한 교민은 "미얀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한국일 겁니다. 정부 인사들이야 후견국인 중국을 짝사랑하지만 서민들은 중국의 상술이 지나치고 욕심이 많다는 이유 등으로 싫어합니다. 인도는 과거 식민지배 시절에 영국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며 제일 미워하죠"고 말했다. 미얀마는 아시아 최고의 천연자원 부국이다. 미개발된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는 물론 니켈과 구리, 아연 등이 대규모로 매장돼 있다. 미얀마의 외국인 투자유치는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에 집중돼 있다. 미얀마 군정은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를 위해 특별경제구역을 설치하기 위한 법령을 준비 중이다. 대(對)미얀마 외국인 투자는 올해 5월을 기준으로 태국과 영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중국 등 순이며 한국은 2억4천200만달러로 9위이다. 미얀마에 진출해 있는 한 한국 기업인은 "시위가 진압되기는 했지만 미얀마의 거스를수 없는 대세는 민주화와 시장경제로 가는 것"이라며 "역사가 말해주듯 군사정부가 영원히 정권을 잡을 수는 없는 만큼 우리 기업들도 천연자원이 풍족한 미얀마의 잠재가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양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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