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10 21:39
수정 : 2007.12.10 21:39
한밤 가정집 급습…폭행·감금에 고문까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비좁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미얀마 출신 이민자 캉룽은 늦은 밤 다른 동료들이 잠자는 동안 창밖을 유심히 내다본다. 혹시나 불법 이민자 단속대가 들이닥치지 않을까 돌아가며 망을 보는 것이다. 그는 “특히 밤이 더 무섭다”며 “정글로 이사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10일 말레이시아에서 무지막지한 불법 이민자 단속으로 인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불법체류 단속은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 방식과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불법체류 단속의 가장 큰 특징은 자원봉사자 등으로 이뤄진 특수집단인 ‘렐라’가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대행한다는 점이다. 과거 공산당 축출에 대활약을 했던 단체가 불법 이민 색출의 선봉대로 변신한 것이다.
렐라 요원들은 한밤에도 영장 없이 들이닥쳐 가정집을 뒤지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고문·절도·불법감금을 저지른다고 인권단체는 비난한다. 실제로 지난 10월 한 인도네시아 여성이 단속반원에게 한달여 동안 감금돼 성폭행 등을 당한 사실이 드러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했다. 인도네시아 외교관 부인이 쇼핑센터에서 불법 노동자로 오해받아 감금되기도 했다. 불법 이민자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인도, 네팔, 베트남, 미얀마 등에서 건너왔다.
렐라 단속대는 하룻밤에 30~40곳을 급습한다. 불법 이민자들은 체포되면 최대 5년의 감옥살이와 채찍질 6대의 처벌을 받는다. 옥살이를 마치면 인적이 드문 국경지대로 보내져, 고기잡이배에 팔리거나 성매매를 강요받기도 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올 들어 11월까지 15만6천여명을 단속해 3만여명을 수용소에 보냈다. 이 단속대는 조만간 14개 이민자수용소 운영도 맡을 예정이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영장도 없이 야밤에 들이닥쳐 폭행하고, 돈을 빼앗고, 휴대전화와 옷·보석 등을 압수한 뒤 수갑을 채워 임시수용소로 보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단속대 쪽은 “말레이시아에서 불법 이민자는 마약에 이어 두번째 적”이라며 “단속에 나서는 자원봉사자들을 모두 교육할 시간이 없고, 인권을 신경쓰면 제대로 단속업무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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