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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치닫는 타이 분열
타이 민주주의가 고사하고 있다. ‘존왕 기득권 세력’과 ‘부패 포퓰리스트 세력’의 충돌 사이에서 건전한 시민사회와 정치세력이 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 타이 정부는 지난 8월 존왕 기득권 세력이 주축인 반정부 시위대에 정부 청사를 내줬고, 지난주 임시청사였던 공항도 뺏겼다. 시위대는 부두까지 봉쇄하겠다고 위협했다. 반면 부패 포퓰리스트 세력이 중심인 친정부 시위대는 “정부가 공항을 점거한 반정부 시위대를 쓸어버릴 권리가 있다”며 방콕 도심에서 몇 천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몰아냈던 2006년 쿠데타 당시 모습의 재탕이다. 푸미폰 아둔야뎃 타이 국왕은 오는 5일 81번째 생일을 맞는다. 어떤 선물을 ‘하사’하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엘리트·자본 지지받으며 국왕 옹호 반정부 세력 시위통해 군 개입 명분 쌓기 분석도 “옥빠이(물러나라)!” 2006년 탁신 친나왓에서, 올 상반기에는 사막 순타라웻으로, 그리고 지금은 솜차이 웡사왓 총리로 목표는 바뀌었지만 구호는 동일하다. 엄연히 선거에서 이긴 다수당이 낸 총리에게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현 집권 연정을 주도하는 피플파워당(PPP)은 233석(48.5%)의 압승을 거뒀다. 피플파워당은 기타 5개 정당과 연정을 꾸리면서 집권했다. 반정부 진영은 이 피플파워당이 사실상 지난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전 총리의 꼭두각시라는 주장을 편다. 부패 혐의로 탁신 정권이 무너지고, 그가 만들고 이끌었던 타이락타이(TRT) 당이 해체됐는데, 이 세력이 피플파워당을 새로 꾸려 집권했다는 비난이다. 시위대의 중심인 민주주의민중연대(PAD)는 언론재벌 손띠 림통쿨과 ‘청백리’의 표상인 짬롱 시무앙 전 방콕시장 등이 주도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방콕의 중산층·상류층과 남부 지역의 지지를 받으며, 민주당 일부와 군부의 엘리트 그룹과도 성향이 맞닿아 있다. 2006년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탁신의 부패 행각을 끊임없이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던 이들은, 쿠데타 발생 이틀 뒤 자발적으로 해산했다. 이 때문에 쿠데타를 지지한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현재 시위를 벌이는 것도 군의 개입을 조장하는 행태라는 지적을 받는다. 입헌군주인 푸미폰 국왕은 약자를 보듬어주는 ‘어진 군주’란 평가를 받지만, 사실 타이 왕실은 재정적 투명성마저 확보하기 힘든 막대한 자본가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농민·빈민층의 지지를 얻는 탁신 세력보다는 반정부 세력과 계급적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 시위대는 왕실의 상징인 노란색을 내세워 ‘왕을 위해’라는 해묵은 구호로 정권 퇴진 운동을 호소한다. 아직 왕실은 어떤 정치적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민중연대는 8월에 점거한 정부청사의 포위망을 여태 풀지 않고 있다. 임시청사가 있던 돈므앙 공항과 수완나품 공항까지 ‘접수’했다. 집무실을 모두 빼앗긴 솜차이 총리는 다른 공항을 통해 입국했으나, 수도 방콕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지역을 떠돌고 있다. 정부가 진압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군부에 쿠데타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부패 아랑곳 않고 맹목적 지지 친정부 세력 탁신의 농·빈민층 정책 약발…포퓰리즘 비난도 타이의 친정부 시위대가 목표로 하는 것은 사실상 탁신 친나왓(59) 전 총리의 귀환과 그 세력의 집권이다. 그에 대한 농민과 도시빈민층의 폭넓은 지지가 지금도 식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친정부 시위 장소에 탁신의 목소리가 스피커에 나오고 동영상이 중계되자 노란색 반정부 시위대와 구분짓기 위해 빨간색을 띠기로 한 지지자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지난 2월 탁신이 일시 귀국했을 때엔 공항에 빈민 여성들이 모여들어 감격에 겨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탁신은 2001년, 2005년 총선에서 자신이 꾸린 타이락타이당을 압승으로 이끌었고,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2006년 선거에서도 과반을 확보했다. 지난 선거에서 승리한 피플파워당도 사실상 탁신 세력이다. 피플파워당은 탁신을 내세워 인구 60%를 차지하는 농민들의 지지를 거머쥐고 있다. 때문에 다시 선거를 치른다 해도 피플파워당의 승리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탁신의 ‘길고도 넓은’ 지지는 30밧 의료제도(약 1200원으로 기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나 농가부채 탕감과 같은 정책이 농민층과 도시빈민층의 절대적인 환영을 받은 결과다. 부패한 관료와 엘리트 정치에 지친 타이 사회에 탁신은 새로운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반독재민주주의연합전선(UDD)을 주축으로 하는 현 친정부 시위대는 농민과 도시빈민을 지지 기반으로, 그리고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비기득권 지식인층이 참여하는 형태다. 외형으로 보면 이들이 타이 민주주의를 떠받칠 세력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이 포퓰리즘과 신자유주의를 극단적으로 오가는 부패 정치세력과 연합해, 정통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에서 전직해 통신회사 친코퍼레이션을 일군 성공적인 기업가 탁신은 재임 기간 실시했던 복권사업과 대미얀마(버마) 차관제공, 국유지 불법 매입, 권력남용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탁신 일가가 소유한 친코퍼레이션의 지분을 싱가포르 국영투자회사인 테마섹 홀딩스에 매각하면서 불거진 탈세 혐의는 결정적이었다. 자본가로서의 배경이 결국 정치인으로서 탁신의 삶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탁신은 아직도 적극적으로 책임을 해명하지 않았다. 군부 집권 기간 내내 영국에서 사실상 망명생활을 하다가, 지난 총선에서 ‘친위’ 세력인 피플파워당이 집권하자 타이로 돌아와 재판을 받았다. 김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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