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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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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7일 20년만의 총선
군부가 의석의 25% 지명하고 선거위원회도 구성
“선거거부” “참여해야” NLD 분열에 일부 탈당도
1988년 8월25일 버마(미얀마) 랑군(양곤) 슈웨다곤 사원 근처에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예정보다 훨씬 일찍 집회 장소에 모였고, 집회의 안전을 책임진 승려와 학생들은 연단 주변에 인간띠를 쳤다. 이들이 기다린 이는 이날 처음으로 공식적인 정치연설을 한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치였다. 스웨덴 출신 저널리스트 버틸 린트너는 <아웅산 수치와 버마 군부>라는 책에서 수치가 이날 이후 “미얀마의 가장 대표적인 야당 지도자”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말했다. 수치가 중심이 된 민족민주동맹(NLD)은 2년 뒤인 1990년 총선에서 전체 492석 중 394석(득표율 59%)을 차지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둬, 군부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미얀마 군부는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한국의 12·12 쿠데타 이후 만들어진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연상하게 하는 군사평의회 조직을 통해 의회 없는 통치를 강행했다. 이 와중에 수치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최근 수치는 11월7일 20년 만에 치러지는 미얀마 총선을 앞두고 자신이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의 해체와 분열이라는 고난에 직면했다. 수치와 민족민주동맹의 주류는 이번 선거가 ‘군복을 벗은 군부의 지배’나 다름없다는 이유로 보이콧하기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수치는 “민족민주동맹이 총선에 참여하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선거를 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며 강경하다. 민족민주동맹 주류도 수치의 뜻을 따라 총선 참여를 위해 필요한 정당 등록을 하지 않아, 당은 지난 5월 해체됐으며 뜻을 같이하지 않는 이들은 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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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총선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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