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28 21:06
수정 : 2011.10.2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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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홍수 피해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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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면, 제방높이 이상 상승…국왕 입원한 병원도 위험
잉락 총리 “완전히 막을수 없다”…미·일도 ‘여행자제령’
공장 노동자인 니따야 소다는 그의 여섯살, 세살짜리 두 아들과 함께 27일 사람으로 꽉 찬 타이 방콕 북부의 버스터미널에 섰다. 그의 집과 다니던 공장이 모두 홍수로 잠겨버린 탓이다. “이게 최선이에요.” 그는 독일 <데페아>(dpa) 통신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방콕에서 북동쪽으로 560㎞ 떨어진 우돈타니의 친정으로 갈 예정이다. 보통 8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지만 고속도로가 물에 잠긴 탓에 버스가 빙 돌아가야 해서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언제 돌아올지도 기약이 없다. 공장이 다시 가동되면 돌아올 생각이지만, 홍수 피해를 복구하기까지 적어도 한달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만 들려온다.
사상 최악의 홍수 위기를 겪고 있는 방콕이 이번 주말 최대 고비를 맞는다. 29일 저녁 만조가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이다. 북쪽에서 밀려 내려오는 엄청난 양의 물과 남쪽에서 만조로 불어나 밀고 올라오는 바닷물이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방콕이 한순간에 물에 잠길 위험이 커진다. 이미 침수가 시작된 방콕 북부 지역 수천명의 피난민은 역과 버스터미널에 북새통을 이룬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잉락 친나왓 총리는 27일 “지금 우리는 거대한 자연과 맞서고 있고,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석달째 계속되며 북부를 휩쓴 물벼락은 방콕을 둘러싸고 서서히 남진하고 있다. 북부 지역에서 방콕 쪽으로 흘러내려오는 물은 하루에 5억5000만㎥나 된다고 방콕 영어신문 <더 네이션>은 보도했다. 올림픽 규격 수영경기장 50만개를 채울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거기에 타이 해군이 높이 2.57m는 될 것으로 전망한 만조가 29일 저녁 남쪽에서 역류해 올라온다. 평균높이 2.5m 수준의 낡은 방콕 제방이 이 ‘물폭탄’을 견딜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현재 방콕의 50개 구역 중에 13곳이 잠겼는데 모두 북부 외곽 지역이다. 인구 밀집 지역인 중심부는 아직 침수 피해를 보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7일에는 잠시 동안이지만 방콕 중심부를 통과하는 짜오프라야강이 넘쳐 강변에 있는 왕궁이 발목까지 잠겼다. 수천명의 군인이 모래주머니를 쌓으며 끝까지 사수하려고 했던 시리랏병원도 바닥에 잘박하게 물이 넘쳐흘렀다. 이 병원은 몇개월째 푸미폰 아둔야뎃 타이 국왕이 입원중인 곳이다. 국왕이 머무는 병원이 조금이나마 물에 잠긴 것 자체를 타이 사람들은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방콕 1200만명 시민의 대부분은 피난을 떠나기보다 집을 사수하려고 하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물이 차오르더라도 가재도구를 집 안 높은 곳으로 옮기면서 버텨 보겠다는 것이다. 방콕 홍수는 물이 급격하게 불어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조금씩 차오르는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방콕 탈출 움직임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방콕 정부는 27일부터 5일간을 임시 공휴일로 공표했는데, 이 기간에 방콕을 벗어나 근처 파타야나 라용, 후아힌 등으로 대피하려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방콕 정부는 군인 5만명과 트럭 1000대, 선박 1000대를 동원해 피난길에 나선 주민을 보호하고 홍수 피해 대비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시내 상점에서 마실 물과 생필품이 동났고, 침수로 인한 전염병 피해 우려마저 높아지고 있어 비상 상황은 현실화된 지 오래다.
다른 국가들은 방콕을 여행 자제 권고 지역으로 지정하고 나섰다. 이미 영국, 싱가포르, 캐나다 등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타이로 가지 말라고 권고하고 나선 데 이어 27일에는 미국과 일본도 이 행렬에 동참했다. 한국 정부도 지난 25일 방콕과 아유타야주 등을 ‘여행 자제’ 지역으로 선포했다. 지금까지 타이에서 홍수 피해로 377명이 사망했고, 11만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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