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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왼쪽) 전남대 철학과 교수와 팜반득 베트남 사회과학 한림원 철학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9층 하니동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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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ㅣ팜반득 베트남 사회과학한림원 철학원장 -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교류 차원에서 보자면, 베트남과 한국은 이미 ‘친구’다. 베트남한테 한국은 4번째로 큰 수출시장이자, 2번째로 큰 수입국이다. 지금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 가운데 베트남 출신은 한국계 중국인에 이어 2번째로 숫자가 많다. 말 그대로 두 나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하지만 이제까지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베트남은 ‘기울어진 친구’다. 한국에 비해 경제적으로 뒤처진 나라, 베트남전쟁 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긴 나라, 자본주의를 따라잡으려 애쓰면서도 사회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는 나라. 하지만 베트남은 한국과 달리 자기 힘으로 독립과 통일을 이뤘고, 동구사회주의국가들이 몰락하기 훨씬 이전부터 개혁개방정책을 펼쳐 세계체제의 변화에 적응을 꾀했다. 지금도 한켠에선 사회주의가 진화 중이다. 한국이 베트남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국제 세미나 참석차 한국을 찾은 팜반득 베트남 사회과학한림원 철학원 원장과, 그와 오랫동안 교분을 맺어온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가 22일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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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상봉 교수, 팜반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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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레닌주의 필요없다면 포기
산업화 과정 부패 심각…대책 추진중 공산당 일당체제는 개선할 과제
한국군 민간인 학살 죄책감 느껴
기업의 인권침해도 고쳐나가야 김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베트남인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겼고 많은 한국인들이 여기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마무리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득 나는 아버지한테서 민간인 학살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이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그마저도 안 하지 않았나. 김 지금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가 적잖이 문제가 되고 있다. 득 몇몇 한국 기업은 분명히 베트남 노동자를 가혹하게 대했고 중요한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그동안 베트남 정부는 한국 기업한테 노조와 대화를 권고하고 노조의 구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위법한 행동은 엄격하게 처리하겠다고 경고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최근 몇년간의 그런 노력들로 최근엔 한국 기업들의 노사관계가 상당히 나아졌다고 평가한다. 김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높게 평가한다고 했지만 자본주의와 세계화로 인한 병폐도 크다. 베트남은 한국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득 한국은 빈부격차, 도농격차, 즉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에서도 산업화 과정에서 이런 문제와 맞닥뜨리고 있는데, 한국보다는 미리 이를 염려해왔으며 해결책들을 연구해왔다. 베트남이 비록 한국보다 경제력이 뒤처진 개발도상국가이기는 하지만, 사실 한국처럼 양극화 문제를 이렇게 방치하진 않는다. 베트남이 한국보다 사회적 연대가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패 문제와 관련해선 베트남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부패예방기구를 설립하고 학교에서도 이를 예방하는 교육을 하고 있지만, 성과는 아직 높지 않은 편이다. 김 그렇다면 민주주의 문제는 어떤가? 한국은 다당제이고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체제다. 득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체제이긴 하지만, 당내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려고 꾸준히 노력해왔다. 2011년 총선으로 13대 국회가 개원한 이래 개헌을 하기로 의결했고 지난 1월 헌법 초안을 공표했다. 베트남 정부는 헌법 초안을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며 여론을 수렴하고 있다. 이번 헌법 개정의 주요 내용엔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것들이 있다. 베트남은 국민들이 국회의원(500명)을 선출하면 국회의원 중에서 국가주석, 총리, 장관이 선출된다. 당이 해당 자리에 후보자를 추천하면 국회의원들이 임명동의 투표를 하게 된다. 올해부터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베트남에선 국회가 다른 사회주의 국가처럼 요식적인 기구가 아니다.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유지할지, ‘베트남민주공화국’으로 다시 바꿀지도 논의해왔다. 헌법개정위원회가 지난달 회의에서 현 국호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최종 결정은 오는 10월 국회 인준투표에서 이뤄지지만 헌법개정위원회의 견해가 관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시점에서 국가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를 드높이는 길을 분열시키고 왜곡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우리는 ‘부유한 인민, 강한 국가, 민주, 공평, 문명’이라는 사회주의 이상을 위해 시장경제를 도입한 것이다. ‘베트남민주공화국’은 1945년 초대 국가주석인 호찌민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선언을 할 당시 이름이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은 1976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남북통일을 이룬 뒤 붙인 국호다. 정리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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