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7.03 17:05
수정 : 2018.07.0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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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실종된 타이 치앙라이주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이 2일 탐 루엉 동굴 구석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영국 동굴구조 전문가가 촬영했다. 해군 페이스북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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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라이 탐 루엉 동굴서 영국인 동굴구조전문가 2명이 생존 확인
11∼16살 축구팀 소년들 “배고프다…오늘 무슨 요일이냐” 물어
정부, 응급 처치 후 식량 제공하고 탈출 도울 예정
우기 이어지며 구조 난관…수개월 더 기다려야 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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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실종된 타이 치앙라이주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이 2일 탐 루엉 동굴 구석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영국 동굴구조 전문가가 촬영했다. 해군 페이스북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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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아주 강하구나.”
기적이었다. 2일 타이 치앙라이주 매사이지구 탐 루엉 동굴에선 지난달 23일 실종됐던 이 지역 유소년 축구팀 선수 12명과 코치가 살아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영국 동굴구조 전문가인 릭 스탠턴과 존 볼란텐이 잠수통을 메고 수㎞를 잠수해 예상지역보다 조금 더 들어간 깊은 동굴 속에서 생존 신호를 발견했다. 빨강색 축구 유니폼을 맞춰 입은 그대로, 소년들은 한 팀이 돼 서로를 의지했다. 한 줄기 빛도 들지 않는 깊은 동굴 속, 빠른 물줄기가 출렁대는 곳에서 무려 9일을 버텨낸 것이다. 가장 어린 소년은 11살, 맏형도 고작 16살이다.
3일 타이 해군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불어난 물 사이에 드러난 좁은 바위 표면 위엔 소년 12명과 25살 코치가 겨우 발을 붙이고 있다. 스탠턴과 볼란텐이 “몇 명이니” 물으며 손전등을 비추자, 캄캄했던 동굴 안엔 얼굴들이 나타났다. “13명이에요.” 모두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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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턴과 볼란텐은 “훌륭해. 많은 사람이 오고 있어. 괜찮아”라며 소년들을 안심시켰다. 이들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밖으로 나갈 수는 있는지 물었다. “배고프다”는 하소연도 했다. 스탠턴과 볼란텐은 “한 주가 지나 월요일이다. 여기 있은 지 10일째다. 너희들은 아주 강하다”고 힘을 불어넣었다. 소년들은 연신 “고맙다”고 했다. 수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는 듯했고, 간단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문제없었다. 소년들은 동굴 내 가장 너른 공간인 ‘파타야 비치’에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로부터 400여m 더 들어간 지대에서 발견됐다. 지표면에선 800m∼1㎞ 아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23일 훈련을 마친 뒤 동굴로 놀러 온 축구팀은 갑작스레 내린 폭우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동굴 속에 갇혔다. 소년들이 자취를 감춘 뒤 타이 정부는 해군 잠수대원, 경찰, 군인, 국경수비대 등 1000여명을 동원해 이 지역을 수색했다.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 소속 구조대원, 영국, 중국, 필리핀, 미얀마, 라오스 등 세계 각지에서 구조대를 보내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이후 1주일 내내 폭우가 쏟아지면서 동굴 안쪽까지 물이 불어나 생존 예상지점에 접근조차 못했다. 지난주말 잠깐 비가 그친 참에 동굴 내 수위가 낮아지면서 수색을 재개할 수 있었다. 마침내 전 세계가 간절히 바라던 소식이 전해졌다.
아들의 생존을 확인한 부모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12살 몽콜의 어머니인 틴나콘 분피엠은 “너무 기쁘다”면서 “아이가 육체적·정신적으로 적절한 상태이길 바란다”고 했다. 또 다른 생존자 가족은 현지 기자의 질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쁘라윳 짠오차 타이 총리는 성명을 내어 “타이 정부와 국민은 국제사회의 대대적 지원과 협조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 생존 확인된 소년과 코치가 안전하게 회복돼 돌아오길 기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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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치앙라이주 탐 루엉 동굴에 고립돼 있는 유소년 축구팀 선수 가족이 2일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소년들의 사진을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치앙라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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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소년들이 가족 품에 안기기까진 최대 수개월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시엔엔>(CNN) 방송은 우기 때마다 물에 잠겼던 탐 루엉 동굴에서 이들이 걸어 나오기 위해선 앞으로도 2∼3개월을 족히 기다려야 하며, 그 전에 탈출하려면 소년들이 최소 5㎞를 헤엄쳐야 한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흙탕물로 시야가 가려진 좁은 통로를 잠수 경험이 전혀 없던 소년들이 빠져나오는 것은 극도로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온 소년들이 당장 몸을 움직일 여력이 남아있을지도 알 수 없다.
타이 해군은 일단 잠수가 가능한 의사를 현장에 급파해 응급 진료를 할 예정이다. 고칼로리 식량 4개월분과 의약품을 들여보내는 동시에, 이들에게 간단한 잠수 기술도 가르칠 계획이다. 영국 동굴구조협회 부회장인 빌 화이트하우스는 “소년들을 구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면서도 “지금은 우기 중 짧게 지나가는 맑은 날”이라고 우려했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린다면 소년들의 탈출 계획이 더 지연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구조대는 소년들을 꺼낼 수 있을법한 또 다른 통로도 살펴보고 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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