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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2 19:18 수정 : 2005.02.02 19:18

왕권강화 도박…반군 키울수도

네팔의 갸넨드라(58) 국왕이 지난 1일 정부를 해산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국가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 정세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갸넨드라 국왕은 이날 국영 텔레비전을 통해 “정부가 민주총선을 실시하지 못하고 평화를 되찾지도 못했다”고 비난하고 “직접 국정을 장악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겠다”고 밝혔다고 <비비시>가 보도했다. 그는 2일 10명의 장관으로 구성된 새 내각 명단을 발표했으며 총리는 임명하지 않고 스스로 국정을 이끌 것이라고 국영 언론들이 보도했다.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총리와 장관들은 해임된 뒤 가택연금됐고 무장한 병사들이 총리와 여러 정치인들의 집을 포위하고 있다.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전화와 인터넷 등은 모두 차단됐고 언론은 검열을 받고 있으며 공항은 폐쇄돼 네팔을 오가는 항공기 운항도 거의 끊긴 상태다.

네팔 정부는 1996년부터 왕정 폐지와 인민정권 수립을 주장하는 마오주의 반군과 치열한 내전을 벌여왔으며 국민들은 극심한 빈곤과 폭력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정부군과 반군 모두 민간인을 살해하고 고문하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1만1천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와 반군의 평화협상은 결렬된 상태다.

갸넨드라 국왕의 이번 조처는 정치인들을 배제하고 더 큰 권력을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국왕은 2002년에도 데우바 총리를 해임했으나 지난해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뒤 다시 그에게 총리직을 맡겼다. 이번에 다시 그를 해임하면서 총선을 치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정치인들은 반군들이 많은 지역을 장악하고 있어 선거를 치를 수 없다며, 먼저 평화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사건에 대해 국내외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으나, 정치인들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지친 일부 네팔인들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지도 모른다며 기대를 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분석가들은 국왕이 정치인들과 반군에 맞서 왕권을 건 도박을 벌이고 있으며, 반군들과 휴전협정을 맺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정치가들이 반군과 연계해 왕을 몰아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반군은 수도 이외 상당한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마오주의 반군이 네팔을 장악하게 되면 테러리스트의 피난처가 된다며 수천만달러어치의 무기를 네팔 정부에 지원했고, 인도도 자국내 공산주의 무장세력이 네팔 반군과 연대하고 있다며 갸넨드라 국왕을 지지해왔다. 이번 조처 이후 네팔에서 반군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돼 미국과 인도는 강한 어조로 갸넨드라의 행동을 비난하고 나섰지만, 앞으로 이들 강대국의 움직임이 사태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구실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 외무부는 “이번 사태는 네팔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인 동시에 인도에도 중대한 우려사항”이라며 “이번 사태로 이익을 얻는 쪽은 민주주의와 입헌군주제의 전복을 기도하는 세력밖에 없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왕실가족 8명 총격몰살 캬넨드라 배후설 돌아

2001년 6월1일 밤 10시40분께 네팔 왕실은 난데없는 총기 난사로 당시 국왕 비렌드라와 왕비 아이쉬와르야, 공주·왕자 등 일가족 8명이 몰살당했다.

▲ 갸넨드라 네팔 국왕이 총리를 해임하고 정부를 해산한 다음날인 2일 네팔 군인들이 수도 카트만두의 의회 건물 앞을 지키고 있다. 카트만두/로이터 연합



1918년 제정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가의 몰살 이후 최악의 왕실 참극으로 기록된 이 사건의 범인으로 비렌드라 국왕의 아들이자 왕세자였던 디펜드라(당시 30살)가 지목됐다. 디펜드라가 왕실 일가족이 모인 금요정례 만찬장에서 결혼 문제로 어머니와 다투다 술김에 자동소총을 탄알이 떨어질 때까지 난사하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했다는 게 당시 네팔 정부의 발표다. 다음날인 2일 왕실은 혼수상태로 누워 있는 디펜드라를 새 국왕으로 발표하고, 비렌드라 국왕의 동생인 갸넨드라가 섭정을 맡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건 4일째인 4일 디펜드라가 숨지자 갸넨드라가 국왕자리에 올랐다. 4일 동안 국왕이 3번 바뀐 셈이다.

평소 무례한 언행으로 국민의 불신이 높던 갸넨드라가 왕위에 오르자, 국민 수천명이 연일 시위를 벌였을 뿐 아니라 갸넨드라가 군부와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는 음모설도 솔솔 퍼졌다. 의심할 정황은 많았다. 사건이 벌어진 당일 왕실 정례 모임이었는데 유독 갸넨드라만 참석하지 않았으며, 참석했던 그의 아들도 용케 살아남았다. 영국 이튼 칼리지의 수재 출신에다 평소 온화한 성격의 왕세자가 결혼문제로 일가족을 몰살시켰다는 것도 수상하고, 권력욕이 심한 갸넨드라가 왕실과 앙숙관계이던 군부와 절친하다는 점도 걸렸다. 당시 <비비시방송> 등 많은 외신들이 이런 의문을 제기했지만 네팔 왕실이 아직까지 함구하고 있어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한편, 숨진 비렌드라 국왕은 네팔의 민주주의 도입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2년 국왕에 취임한 뒤 절대군주로 권력을 누려오다 비록 90년대 들어 민주화 요구에 굴복해 입헌군주제와 다당제를 도입했지만, 무리없는 통치 스타일로 국민들의 인기가 높았다. 이에 따라, 왕실 몰살사건은 민심 이반 및 마오주의 반군들의 활동을 심화시킨 도화선이 됐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세계 마오주의 현황

현대 중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마오쩌둥의 혁명사상은 전세계 곳곳으로 전파됐다. 1976년 그가 숨진 뒤에도 세계 도처에서 마오의 사상을 무기 삼아 변혁의 깃발을 든 이들은 적지 않다. 이들 대부분은 개혁·개방을 앞세운 현 중국공산당의 정책이 마오쩌둥이 제시한 사회변혁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한다.

1960년대 학생운동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마오주의가 수입된 서유럽에는 당시의 전통이 지금도 남아 있어 ‘마오이스트 국제주의자운동’(MIM)을 중심으로 마오의 변혁철학을 고수하고 있는 정치단체가 여럿 남아 있다. 또 노르웨이의 노동자공산당과 독일의 맑스레닌주의당이 마오주의자들로 채워져 있으며, 터키 북부 쿠르드지역의 마오주의공산당과 그리스의 공산주의자기구 등도 소수지만 마오의 사상을 따르고 있다.

마오쩌둥주의자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곳은 남아메리카 대륙이다. 페루 정부를 위협하며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반군세력 ‘빛나는 길’이 대표적이며, 아르헨티나의 혁명공산당도 마오주의자들이 만든 정당이다. 아시아에서도 마오의 신화는 이어지고 있는데, 합법적 공산당 외에 마오주의 공산반군이 따로 활동하고 있는 네팔을 중심으로 인도와 필리핀 등지에서도 마오주의자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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