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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0 18:54 수정 : 2006.05.11 00:59

장방형 성곽과 함께…광개토대왕비서 100Km 옆
중 “한나라때 것” 주장…두나라 논쟁 비화 조짐

중국 지린성 바이산시 윈펑(운봉)댐 수몰지역에서 고구려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고분 2천여기와 돌로 쌓은 성터가 발견됐다.

이 고분군과 옛 성터는 광개토대왕비와 대왕릉 등 고구려 유적이 대량으로 남아 있는 지린성 지안시에서 동북쪽으로 100㎞ 떨어진데다, 고구려 적석문화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고구려의 유물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9일 유적 발견 사실을 보도하면서 “한나라 때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 한-중 사이에 다시 고구려사 문제를 둘러싼 논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북-중 국경지대 압록강 중류의 북쪽 강변에 위치한 지린성 바이산 지역의 고분군은 1964년 윈펑댐 건설로 42년 동안이나 물에 잠겼으나, 최근 당국이 시설 보수를 위해 댐의 물높이를 41.13m로 낮춤에 따라 모습을 드러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42년간 물에 잠겼던 옛 성터는 1m 두께의 진흙으로 덮여 있었으며, 정방형인 성곽의 높이는 1., 넓이는 4m, 성 외벽은 돌로 쌓은 뒤 안쪽은 돌과 흙을 섞어 보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성벽 밖에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한 넓이 4m, 깊이 1m의 해자가 파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쪽 성벽엔 6m 넓이의 성문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옛 성터의 내부와 성 북쪽에는 10여기의 돌로 쌓은 무덤이 발견됐으며, 성터 안에서는 사방 길이 8m, 높이 2m의 2단으로 쌓은 적석묘인 ‘1호 묘’가 발견됐다. 이번 연구조사팀은 또 수몰지구 안 량민·추피 등 8곳에서 서기전 1세기~서기 4세기에 이르는 고분군 2000여기를 찾아냈다고 보도는 전했다.

<신화통신>은 이번 조사에 참가한 ‘전문가’들의 말을 따 “이런 형식의 무덤은 약 4세기 때의 것으로, 성의 구조와 건축양식이 고구려·발해·요·금 등의 시기와 다르기 때문에 마땅히 한나라 때 쌓은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한나라는 서기 220년에 멸망했고, 이른바 ‘한사군’ 가운데 하나인 낙랑군이 마지막으로 멸망한 것 또한 서기 313년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이이화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은 10일 “이번에 발견된 옛 성터와 고분군은 시기나 지역으로 볼 때 고구려의 것임이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며 “정치적 실체도 분명하지 않았고 정치적 역량도 미미했던 현도군이 이렇게 대규모의 고분군과 성터를 만들어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지금까지의 학술적 연구를 외면한 상식 이하의 억지”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또 “이 지역의 고분군은 고구려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므로 남북한과 중국 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 당국이 나서서 이 소중한 유적들이 다시 물에 잠기지 않도록 강력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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