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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우파투쟁 당시 ‘제1호 우파’로 낙인 찍힌 장보쥔 민주농민노동당 대표가 1959년 군중들에 둘러싸여 야유를 받고 있다. 그의 복권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작가인 그의 딸 장이허는 이런 민감한 출신 때문에 책을 낼 때마다 판금조처를 당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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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마오쩌둥 비판한 지식인 55만명 탄압
최근 공산당에 피해보상, 사과 거세게 요구
1956년 6월8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것이 모두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발표했다. 소수의 우파들이 당을 전복시키려 책동하고 있다고 비판한 이 사설은 중국 지식인 사회를 강타한 이른바 ‘반우파투쟁’의 신호탄이었다. 무려 55만여명의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이 이 폭풍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우파투쟁 당시 공산당에 의해 우파로 낙인찍혔던 61명은 지난달 31일 공산당과 전국인민대표대회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편지에서 “반우파투쟁은 공산당의 명백한 과오”라며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을 요구했다. 베이징 공안국에서 우파로 몰렸던 런중은 홍콩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공산당의 진실된 사과를 요구한다”며 “이제 역사적 진실을 밝힐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반우파투쟁을 마오쩌둥과 공산당의 지식인 탄압으로 규정한다. 중앙당교 교수였던 두광은 한 인터뷰에서 “반우파투쟁은 마오쩌둥의 전체주의를 비판한 지식인들에 대한 폭력이었다”며 “마오쩌둥은 인민의 독립적 사고를 숙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부터 중국 지식인 사회는 독재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며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밝히길 두려워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과 요구에 동조하는 서명운동도 번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달 초까지 700여명이 서명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공산당을 권력 남용 등의 혐의로 법원에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스촨성에서 우파로 찍혔던 티에류는 신문에서 “공산당이 우리의 요구에 당장 반응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그럴수록 더 큰 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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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우파 투쟁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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