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화대등 각대학 사설 토론방 규제 나서 중국이 오는 5일 청명절(칭밍제)을 앞두고 크게 긴장하고 있다. 성묘하는 절기인 청명절을 맞아 베이징의 대학생들이 지난 1월17일 숨진 자오쯔양의 추도식을 베이징 천안문광장 인민영웅기념탑에서 열 예정이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자오쯔양에 대한 추도식이 학생 시위로 번질 것을 우려해 최근 대학생들에 대한 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이른바 ‘민감한 정치적 주장’이 유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난달 16일 각 대학의 사설 토론방을 ‘교내용’으로 전환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대학 사설 토론방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칭화대 ‘수이무칭화’(수목청화, 물 맑고 꽃 아름답다는 뜻)의 경우 16일 공고를 통해 이 토론방을 “‘개방형’에서 ‘교내형’으로 전환한다”고 알렸다. 칭화대 홈페이지의 각 토론방은 순식간에 이 조처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고, 18일에는 수백여 학생들의 항의시위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교내 석탑 앞에 모여 “우리에게 ‘수이무’를 돌려달라”, “정신의 정원을 지키자”는 등의 구호를 석탑에 붙이고 종이로 만든 꽃을 석탑 앞에 바쳐 항의의 뜻을 표시했다. 1989년 이후 노동자 농민들의 권익투쟁이 급증한 데 비해 학생들의 집회나 시위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국은 칭화대의 이 작은 소요에 크게 긴장하고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선전시에서 대학 졸업생 6000여명이 도로를 막고 3시간 동안 시위를 벌이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외자기업의 공채 담당자가 서류접수비를 임의로 올린 데 대한 항의로 벌어진 이 시위 또한 ‘무풍지대’나 다름없던 학생·지식인사회의 집단행동이라는 점에서 당국을 긴장시켰다. 지난 1일에는 자오쯔양 집권기에 국가경제체제개혁위원회 부주임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체제개혁연구실 주임을 지냈던 자오의 오른팔인 바오퉁이 재미 중문 언론 <둬웨이타임스>에 ‘당대 중국 최고의 위대한 개혁자-청명 쯔양’이란 글을 발표해 청명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바오는 이 글에서 “자오가 주도했던 1980년대의 개혁은 도시와 농촌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개혁이었으나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이뤄진 개혁은 중국을 부패 관료의 천국으로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빈부격차를 낳은 불완전한 개혁”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1989년 천안문사태 때 학생운동 지도자였던 왕단(35) 자유아시아방송 특약 평론원은 “많은 사람들이 베이징에서 대규모 학생운동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하지만, 칭화대 사태와 선전의 대학 졸업생 시위는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대규모 학생운동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1976년 1월 저우언라이가 사망했을 때도 석달 뒤인 청명절 때 인민혁명기념비에 헌화하는 행렬이 대규모 시위대로 변해 사인방을 몰아내자는 정치운동으로 발전한 바 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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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명절 앞두고 대학 ‘자오’ 추도식 긴장 |
천안문 광장서 거행 예정…시위화 우려
칭화대등 각대학 사설 토론방 규제 나서 중국이 오는 5일 청명절(칭밍제)을 앞두고 크게 긴장하고 있다. 성묘하는 절기인 청명절을 맞아 베이징의 대학생들이 지난 1월17일 숨진 자오쯔양의 추도식을 베이징 천안문광장 인민영웅기념탑에서 열 예정이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자오쯔양에 대한 추도식이 학생 시위로 번질 것을 우려해 최근 대학생들에 대한 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이른바 ‘민감한 정치적 주장’이 유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난달 16일 각 대학의 사설 토론방을 ‘교내용’으로 전환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대학 사설 토론방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칭화대 ‘수이무칭화’(수목청화, 물 맑고 꽃 아름답다는 뜻)의 경우 16일 공고를 통해 이 토론방을 “‘개방형’에서 ‘교내형’으로 전환한다”고 알렸다. 칭화대 홈페이지의 각 토론방은 순식간에 이 조처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고, 18일에는 수백여 학생들의 항의시위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교내 석탑 앞에 모여 “우리에게 ‘수이무’를 돌려달라”, “정신의 정원을 지키자”는 등의 구호를 석탑에 붙이고 종이로 만든 꽃을 석탑 앞에 바쳐 항의의 뜻을 표시했다. 1989년 이후 노동자 농민들의 권익투쟁이 급증한 데 비해 학생들의 집회나 시위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국은 칭화대의 이 작은 소요에 크게 긴장하고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선전시에서 대학 졸업생 6000여명이 도로를 막고 3시간 동안 시위를 벌이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외자기업의 공채 담당자가 서류접수비를 임의로 올린 데 대한 항의로 벌어진 이 시위 또한 ‘무풍지대’나 다름없던 학생·지식인사회의 집단행동이라는 점에서 당국을 긴장시켰다. 지난 1일에는 자오쯔양 집권기에 국가경제체제개혁위원회 부주임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체제개혁연구실 주임을 지냈던 자오의 오른팔인 바오퉁이 재미 중문 언론 <둬웨이타임스>에 ‘당대 중국 최고의 위대한 개혁자-청명 쯔양’이란 글을 발표해 청명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바오는 이 글에서 “자오가 주도했던 1980년대의 개혁은 도시와 농촌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개혁이었으나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이뤄진 개혁은 중국을 부패 관료의 천국으로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빈부격차를 낳은 불완전한 개혁”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1989년 천안문사태 때 학생운동 지도자였던 왕단(35) 자유아시아방송 특약 평론원은 “많은 사람들이 베이징에서 대규모 학생운동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하지만, 칭화대 사태와 선전의 대학 졸업생 시위는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대규모 학생운동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1976년 1월 저우언라이가 사망했을 때도 석달 뒤인 청명절 때 인민혁명기념비에 헌화하는 행렬이 대규모 시위대로 변해 사인방을 몰아내자는 정치운동으로 발전한 바 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칭화대등 각대학 사설 토론방 규제 나서 중국이 오는 5일 청명절(칭밍제)을 앞두고 크게 긴장하고 있다. 성묘하는 절기인 청명절을 맞아 베이징의 대학생들이 지난 1월17일 숨진 자오쯔양의 추도식을 베이징 천안문광장 인민영웅기념탑에서 열 예정이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자오쯔양에 대한 추도식이 학생 시위로 번질 것을 우려해 최근 대학생들에 대한 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이른바 ‘민감한 정치적 주장’이 유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난달 16일 각 대학의 사설 토론방을 ‘교내용’으로 전환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대학 사설 토론방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칭화대 ‘수이무칭화’(수목청화, 물 맑고 꽃 아름답다는 뜻)의 경우 16일 공고를 통해 이 토론방을 “‘개방형’에서 ‘교내형’으로 전환한다”고 알렸다. 칭화대 홈페이지의 각 토론방은 순식간에 이 조처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고, 18일에는 수백여 학생들의 항의시위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교내 석탑 앞에 모여 “우리에게 ‘수이무’를 돌려달라”, “정신의 정원을 지키자”는 등의 구호를 석탑에 붙이고 종이로 만든 꽃을 석탑 앞에 바쳐 항의의 뜻을 표시했다. 1989년 이후 노동자 농민들의 권익투쟁이 급증한 데 비해 학생들의 집회나 시위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국은 칭화대의 이 작은 소요에 크게 긴장하고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선전시에서 대학 졸업생 6000여명이 도로를 막고 3시간 동안 시위를 벌이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외자기업의 공채 담당자가 서류접수비를 임의로 올린 데 대한 항의로 벌어진 이 시위 또한 ‘무풍지대’나 다름없던 학생·지식인사회의 집단행동이라는 점에서 당국을 긴장시켰다. 지난 1일에는 자오쯔양 집권기에 국가경제체제개혁위원회 부주임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체제개혁연구실 주임을 지냈던 자오의 오른팔인 바오퉁이 재미 중문 언론 <둬웨이타임스>에 ‘당대 중국 최고의 위대한 개혁자-청명 쯔양’이란 글을 발표해 청명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바오는 이 글에서 “자오가 주도했던 1980년대의 개혁은 도시와 농촌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개혁이었으나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이뤄진 개혁은 중국을 부패 관료의 천국으로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빈부격차를 낳은 불완전한 개혁”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1989년 천안문사태 때 학생운동 지도자였던 왕단(35) 자유아시아방송 특약 평론원은 “많은 사람들이 베이징에서 대규모 학생운동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하지만, 칭화대 사태와 선전의 대학 졸업생 시위는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대규모 학생운동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1976년 1월 저우언라이가 사망했을 때도 석달 뒤인 청명절 때 인민혁명기념비에 헌화하는 행렬이 대규모 시위대로 변해 사인방을 몰아내자는 정치운동으로 발전한 바 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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