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5.10 20:50 수정 : 2009.05.11 01:42

지진으로 딸 장옌을 잃은 우쿤췬(38)이 8일 서글픈 표정으로 딸의 영정을 들고 있다. 졸업을 10여일 앞두고 무너진 학교에 깔려 숨진 당시 열다섯살의 장옌은 영정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두장옌/유강문 특파원

중학생 아이 잃은 학부모들의 슬픔

12일은 중국 쓰촨성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쓰촨성 정부의 집계를 보면, 당시 대재앙으로 6만8712명이 숨지고, 1만7921명이 실종됐다. 시간이 흘러 건물과 도로는 상당 부분 복구됐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컨테이너로 만든 난민촌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쓰촨성 대지진이 남긴 상처와 이를 조금씩 치유해가는 현장을 찾아가봤다.

중국정부, 진상 규명없이 학부모 접근조차 막아
“균열 조금만 손봤어도 아이들 잃지 않았을텐데”

“지은 지 몇 십년 된 낡은 집들도 멀쩡한데 학교만 무너졌습니다.”

 대지진이 닥쳤을 때 중학교에 다니던 딸 장옌(당시 15살)을 잃은 우쿤췬(38)은 자식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지진이 아니라 ‘학교’라고 믿는다. 건물을 너무 부실하게 지은 탓에 작은 충격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이다. 8일 오후 쓰촨성 두장옌 근처 쥐위안의 난민촌에서 만난 그는 “학교는 ‘두부’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며 가슴을 쳤다.

 딸은 당시 졸업을 10여일 앞두고 숨졌다. 15살 생일을 지난 지 두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 삽시간에 건물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그는 지금도 그 순간 딸이 느꼈을 공포와 고통을 생각하면 숨이 가빠진다. “내가 죽더라도 그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하늘이 왜 이리도 잔인합니까?”

 학교는 처음부터 탈이 많았다. 그가 어느 날 학부모회의에 갔더니 베란다에 균열이 번지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베란다에서 노는 학생들에게 위험하니 교실로 들어가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지진이 닥치자 결국 학교는 계단만 남기고 폭삭 내려앉았다. 그는 “균열을 조금 손만 봤더라도 아이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학생들의 공동묘지로 변한 학교는 언제부턴가 ‘금지구역’이 됐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조차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다. 지난 청명절 날엔 몇몇 부모들이 학교에 들어가 향불을 피우고 종이돈을 태우다 당국의 제지로 곤욕을 치렀다. 두명이 끌려가고, 우쿤췬도 얼굴을 맞아 피를 흘렸다. 자식들을 추모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그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컨테이너로 만든 집에는 지금도 딸이 쓰던 책이며, 옷가지가 남아 있다. 화장대 위엔 딸이 좋아했던 토끼 귀를 닮은 머리띠가 놓여 있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환하게 웃는 딸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딸은 어디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킨다.

지진으로 폐허로 변한 베이촨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9일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은 비석이 서 있다. 베이촨/유강문 특파원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딸은 커서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다. 성격이 쾌활했고 성적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힘겹게 살아가는 부모를 생각해선지 말썽도 피우지 않았다. 놀러나갈 때면 먼저 언제까지 들어오겠다고 말했고, 꼭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런 손녀를 잃은 탓인지 외할아버지 우바오쯔(80)는 옆에서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어쩌면 자기가 딸을 죽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쫓기기도 한다. 살길을 찾아 남편과 함께 이곳에 온 그는 처음엔 딸을 고향에 두고올까도 고민했다. 그러다 딸에게 좀더 나은 교육을 시키려고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 ‘소박한 욕심’이 결국 딸을 콘크리트 더미에 파묻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가 지진 때문에 무너졌다는 말을 들으면 울화가 돋는다. 학교 주변의 낡은 집들 가운데 3분의 1만 무너졌어도 그 말에 수긍했을 것이다. 그는 바다에서 가라앉은 난파선처럼 유독 학교만 무너진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이런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을 수 있으면 속이라도 좀 풀릴 것 같다.

 이곳 난민촌에는 우쿤췬과 같은 속병을 앓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마흔이 넘어 아이를 얻은 한 부모도 그날 그 자식을 잃었다. 한 부모는 학교 잔해에서 건져낸 자식을 안고 병원까지 달려갔다가 “왜 이미 숨진 아이를 데려왔느냐”는 의사의 말을 듣고 혼절하기도 했다. 그는 “하나 뿐인 아이가 죽으면서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며 울먹였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대지진으로 희생된 학생들의 숫자를 공개하지 않아 부모들의 원성을 샀다. 쓰촨성 정부가 지난 7일에서야 대지진으로 학생 5335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고 발표했을 뿐이다. 적잖은 부모들이 제기하는 학교 부실시공 문제에 대해선 “학교 붕괴는 지진 등 여러가지 원인이 겹쳐 일어난 것”이라며 딱 꼬집어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정부의 태도는 졸지에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원통함은 물론, 일반적인 중국인들의 생각과도 거리가 멀다. 한 인터넷 조사에선 1만2천여명의 응답자 가운데 90% 이상이 정부가 학교 부실공사 여부를 조사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답했다. 우쿤췬은 “주변에서 많은 부모들이 학교의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하다 곤욕을 치렀다”며 “정부가 부모들의 소리를 겁내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학교로 들어가는 입구는 철망으로 막혀 있었다. 철망에 다가가니 한 청년이 다가와 거기엔 들어갈 수 없다고 막아섰다. 잠시 뒤에 한 사람이 더 오더니, 곧이어 경찰차까지 나타났다. 철망 너머로 언뜻 보이는 학교터는 어느덧 풀이 무성히 자라 있었다. 우쿤췬은 “(지진 1주년인) 12일에도 학교가 열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쥐위안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기리는 추모회를 준비하고 있다.

두장옌/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지진으로 수백명의 학생들이 숨진 베이촨 중학교에서 노부부가 향을 피우고 종이돈을 태우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들은 당시 교사로 일하던 형제를 잃었다. 베이촨/유강문 특파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