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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09 19:57 수정 : 2012.08.09 19:57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

문혁 ‘4인방’과 처벌받은뒤 자살
당국, 마오 대신 정치책임 물어
보시라이 덮으려는 의도도 동일

1980년 11월,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사진)이 중국 수도 베이징의 법정에 섰다. ‘4인방’의 일원으로 문화대혁명 시기 동안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그는 죄수가 되어 6주 동안 재판을 받았다. 그가 검찰을 비난하는 모습을 비롯해 재판의 주요 장면들은 전국에 중계됐다. 그는 문혁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형 판결을 받았고, 이후 종신형으로 감형된 상태에서 자살했다.

32년 뒤, 허페이성의 법정에 선 구카이라이의 처지에는 장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유명한 변호사로 ‘중국의 재클린 케네디’로 불렸고, 유력한 차기 상무위원의 아내로서 거칠 것 없었던 그는 이제 중국에서 가장 민감한 살인 용의자가 됐다.

공산당 지도부는 이 재판을 통해 중국 최대의 정치스캔들 중 하나인 ‘보시라이 사건’의 초점을 구카이라이의 살인에 대한 단죄로 돌리려 하고 있다. 남편 보시라이에 대한 정식 형사기소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당의 유력한 지도자였지만 이제는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은 보시라이의 어두운 면은 더이상 공개하지 않고 넘어가겠다는 당 지도부의 타협이자 선긋기다. 보시라이 일가의 막대한 부정부패와 해외 자산도피, 권력투쟁을 둘러싼 월권 행위 등을 공개할 경우 당과 지도부 전체에도 먹칠을 하고 정치적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장칭 등 4인방에 대한 재판이 마오쩌둥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문혁의 아픈 역사를 덮기 위한 정치적 재판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은 건국의 아버지이자 국부인 마오쩌둥의 책임을 묻지 않고, 마오의 아내 장칭의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문혁의 혼란과 고통의 책임, 마오쩌둥의 공과 과를 정확히 규명하지 않은 이런 ‘해법’은 지금까지도 중국의 정치·사회에 막대한 부작용을 남기고 있다.

장칭 재판에서 변호팀의 일원이었던 원로 변호사 장스즈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4인방에 대해서처럼, 지도부는 정치적 문제를 밝히고 해결하길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의 이익에 불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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