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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왼쪽) 주석은 한국에 ‘친중 반일 탈미’라는 신조선책략을 압박한다.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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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오늘날 조선의 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를 막는 책략은 무엇과 같은가?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함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따름이다.” 구한말인 1880년께 청의 외교관 황쭌셴(황준헌)은 <조선책략>을 통해서 한반도와 주변 4강 미·중·러·일의 국제 관계를 최초로 우리에게 일깨웠다. 그는 “천하는 러시아를 제어할 나라로는 중국만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을 권유했다. 그의 요지는 ‘중국 주도의 합종책’이다. 합종책이란 중국 전국시대 때 최강자 진에 맞서기 위한 주변국의 수평적 연합이다. 기본적으로 대등한 연합이다. 130년이 지난 오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국에 신 ‘조선책략’을 내놓았다. ‘친중국, 반일본, 탈미국’이다. 여기에 ‘통북한’, 즉 북한과의 소통과 대화를 추가한다. 시진핑은 지난 4~5일 방한에서 일본에 맞선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인 우호관계를 들먹였다. 반일을 매개로 한 동아시아 국제 질서 개편을 모색했다. 그는 서울대 강연에서 “양국 군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해 싸웠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중·한에 대한 야만적 침략 전쟁” 등 외교적 수사를 걷어낸 반일 발언을 이어갔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국 주도의 연횡책’이다. 연횡책은 진이 합종책에 대응해 만든, 주변국과의 수직적 동맹이다. 자신을 정점으로 한 상하관계이다. 동아시아 국제 관계에서 합종연횡은 단순히 수사가 아니다. 냉전 이후 동아시아에는 중국 주도의 합종책과 미국 주도의 연횡책이 맞섰다. 북-중-러의 북방 연합이 중국 주도의 합종책이고, 한-미-일 남방 동맹이 미국 주도의 연횡책이었다. 냉전 이후 미국은 미-일 동맹에 한국을 일체화해 북쪽 진영의 맹주인 중국을 포위압박해 왔다. 미국은 이제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권리인 집단자위권을 승인하고, 이런 구도를 더욱 강화하려 한다. 전국시대 최강국 진은 자신의 휘하에 들어오면 안보를 보장하겠다고 주변국을 각개격파하는 연횡책을 쓰며 합종책을 분쇄했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일본과 한국에 자신과의 수직적 동맹 체제를 강화해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연횡책을 써왔다. 이에 맞서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와의 수평적 연합인 합종책으로 미국의 연횡책에 맞서왔다. 중국의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관계가 미국의 일본과 한국에 대한 관계처럼 우월적이고 압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1대1로 맞설 만큼 커진 중국은 이런 한-미-일 남방동맹 대 북-중-러 북방연합의 구도의 해체를 시도하고 있다. 한-일의 과거사 갈등을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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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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