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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9 19:16 수정 : 2006.03.09 21:47

역외 수입 늘자 공동대응 요구…각국 ‘안보’ 이유로 거부

‘하나의 유럽’을 향한 유럽연합의 행진이 에너지 문제라는 장벽을 만났다.

대형 에너지기업들 간의 합병이 보호주의에 걸려 지지부진한 가운데, 단결을 촉구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에너지 안보를 내세우는 각국 정부가 충돌을 빚고 있다. 에너지를 둘러싼 ‘유럽주의’와 ‘일국주의’의 갈등이다.

에너지는 국방과 함께 유럽연합의 개별 국가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약한 부문이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 집행위는 8일 에너지문제 정책보고서에서 “시장을 통합하고 공급망을 짜기 위해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집행위는 에너지 원료 비축을 위한 규정 신설과 공급선 다변화가 필요하고, 20년간 1조2천억달러의 투자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집행위는 유럽 에너지시장이 통합되면 미국 다음가는 구매 협상력을 지닐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마누엘 바로주 집행위원장은 이번주 말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에 에너지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제3국으로부터 오는 가스가 러시아 영내 가스관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유럽연합은 현재 50% 수준인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2030년께면 원유는 90%, 가스는 70%까지 높아질 것으로 본다. 유럽은 에너지 원료의 30%를 러시아로부터 들여오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러시아가 옛 소비에트연방 나라들에 가스 공급 중단 위협을 가해, 유럽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때문에 공동 대응에 나서야 협상력이 높아지고,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에너지 소비국들한테도 밀리지 않는다는 게 유럽연합의 시각이다.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 외교정책위원장은 9일치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유럽은 중동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며 단일한 에너지외교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유럽연합의 사정은 절박하지만, 일부 국가들은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시장 문을 열지 않고 있다. 독일 에너지기업 에온은 347억달러에 스페인 기업 엔데사 인수를 시도하나, 스페인 정부의 반대가 완강하다. 이탈리아 에너지기업 에넬은 프랑스의 수에즈가 소유한 벨기에 회사 인수에 실패했다. 프랑스 정부는 정부 지분을 이용해 수에즈와 가즈드프랑스의 400억달러짜리 합병을 성사시켜 외국 기업의 진입을 차단했다. 이에 이탈리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8일 이 문제의 조사에 들어갔다. 인수·합병 바람은 에너지산업의 중요성 증대와 낮은 금리, 시장 개방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인수·합병 바람에 놀란 네덜란드는 4개 전력회사의 민영화 계획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공급 중단이라는 불안에 시달리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은 공동 원전을 건설하기로 하는 협약을 맺고 에너지 주권 확보에 나섰다.

유럽연합 집행위와 영국 등 에너지시장 개방을 추구하는 쪽은 일부 기업이 민족주의의 장막 뒤에서 자국 시장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유럽 전체의 협상력 약화와 소비자 부담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에너지 주권을 내세우는 쪽은 안보와 함께 고용을 고민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고민은 에너지시장 통합에 미온적인 나라들을 강제할 특단의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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