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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12 19:16 수정 : 2006.03.12 19:16

참혹한 인종학살 단죄 기회 잃어


1990년대 옛 유고연방을 피로 물들게 한 ‘발칸의 도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65) 전 세르비아 대통령이 수감 중 갑자기 숨졌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 감옥에서 국제법의 심판을 두 달여 앞둔 상황이었다. 전범재판소는 가장 중요한 피고인을 잃은데다 독살설마저 제기돼 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유고연방 피로 물들인 전 세르비아 대통령
선고 두달 앞두고 사망…일부선 독살설

전범재판소는 11일 “밀로셰비치가 감방 침대에서 아침에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전범재판소는 자살이나 타살 흔적은 없다며 자연사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가 숨지기 불과 6일 전에는 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밀란 바비치가 같은 감옥에서 자살하기도 했다. 이로써 유고 전범 재판과 관련해 옥중에서 숨지거나 체포작전 중 피살된 인물은 11명이 됐다.

밀로셰비치는 1989년 세르비아 대통령에 오른 직후 유고연방이 해체되기 시작하자, ‘대 세르비아주의’를 내걸고 유고연방 안 세르비아계를 부추겨 참혹한 내전의 씨앗을 뿌렸다. 20만명이 희생된 크로아티아내전(1991~95),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보스니아내전(1992~95), 1만명을 숨지게 한 코소보내전(1998~99)이 결과물이다. 인종청소와 집단 성폭행, 230만명의 난민 발생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은 발칸전쟁은 유엔과 나토군의 개입으로 진정됐다. 2000년 민중봉기로 실각한 그는 이듬해 66건의 전쟁범죄 혐의로 전범재판소로 넘겨졌다.

그의 돌연사로 반인도적 전쟁범죄 심판이라는 중요한 전범을 세울 것으로 기대되던 재판은 겉돌게 됐다. 그를 기소한 칼라 델 폰테 검사는 “정의의 심판을 기다리던 전쟁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2차대전 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인종학살에 대한 본격적 심판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반인도적 전쟁범죄를 제대로 단죄할 기회로 여겨졌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부인 미리아나 마르코이스는 <시엔엔(CNN)>과의 인터뷰에서 “전범재판소가 그를 죽였다”고 비난했다. 변호인은 “밀로셰비치는 독극물을 주입받고 있다고 나한테 말했다”고 주장했다. 밀로셰비치는 고혈압과 만성심장질환을 이유로 모스크바에서 치료받기를 원했지만 지난달 재판소로부터 거절당했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11일 “치료 뒤 그의 송환을 보증까지 했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밀로셰비치의 계승세력인 사회당 당사에 그의 초상화 현수막이 내걸리고 꽃과 촛불을 든 추모 인파가 몰리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는 코소보와 몬테네그로의 독립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로셰비치의 죽음은 두고두고 발칸반도의 불화의 잠재적 씨앗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모가 자살해 비극적 성장기를 보낸 밀로셰비치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에서 경력을 쌓았고, 연방 와해 과정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자극해 입지를 굳혔다. 세르비아계의 불만을 전쟁으로 돌리며 권력을 유지한 기회주의자라는 평가가 많다. 그는 재판에서 “나는 광란의 국수주의를 타파하려 했지만, 서방의 분열책동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 진정한 평화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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