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16 19:58
수정 : 2006.03.16 19:58
|
9면
|
벨로루시·카자흐 등 야당탄압·부정선거 난무
옛 소련에서 독립한 공화국들의 독재체제가 경쟁이라도 벌이듯 장기화하는 가운데, 야당·언론 탄압과 부정선거 시비, 정적 살해가 꼬리를 물고 있다.
벨로루시에서는 오는 19일 대선을 앞두고 유럽연합과의 신경전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2004년 유럽연합 등이 ‘공정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절차였다고 평가한 국민투표에 의해 3선 제한이 없어지자, 3번째 임기에 도전한 알렉산더 루카셴코 대통령이 이번에도 야당과 언론 탄압, 집회 자유 제한 등을 기반으로 압승을 노리기 때문이다.
벨로루시는 부재자투표 첫날인 지난 14일 감시에 나선 스웨덴인과 덴마크인 8명을 추방했다. 이어 유럽연합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선거감시단 입국을 차단했다. 지난달에는 야당 후보 1명이 경찰로부터 폭행당한 뒤 구금됐고, 이달에도 야당 인사 체포가 이어졌다. 1994년 집권해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루카셴코 대통령은 “전제적 통치 스타일이 내 성격에 맞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 지역 공화국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1990년 소련 체제에서 카자흐스탄공화국 대통령에 앉은 뒤 권좌를 지켜온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선에 성공했다. 대선 직전 주요 야당 지도자가 권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고, 지난달에는 다른 야당 지도자가 경호원 및 운전기사와 함께 총에 맞아 숨졌다. 정보기관 요원들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정부는 “개인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
지난해 5월 500여명이 숨진 ‘안디잔 학살’로 악명을 떨친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치하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 테러분자들의 책동으로 사건을 규정한 정부는 반대세력을 ‘국제 테러리스트’라며 잡아들이고 있다. 1989년 소련공산당 우즈베키스탄공화국 제1서기로 권력을 잡은 카리모프 대통령은 1999년 한 소요사태와 관련해 “200명의 목을 칠 준비가 돼있으며, 그게 내 아들이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투르크메니스탄 방송에서는 ‘하나의 신, 하나의 조국, 하나의 지도자’라는 찬가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1992년 선거에서 99.5%의 믿기 힘든 득표율을 기록한 사파무라트 니야조프는 종신대통령을 선언했다. 그는 지난해 갑자기 2009년에 대선을 치르겠다고 선언했지만, 실현 여부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니야조프 대통령은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며 방송이나 행사에서 음반 사용을 금지하는 등 기이한 행동으로 유명하다.
2003~2005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을 비롯해 그루지야와 키르키즈스탄에서 잇따른 민중항쟁으로 독재체제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벨로루시나 중앙아시아의 세 나라에서는 반독재세력의 기반이 철저하게 파괴당해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