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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전후 독일서 ‘비밀고문시설’ 운영 |
영국이 전후 독일에서 미국이 이라크에 설치한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를 방불케하는 비밀고문시설을 운영했던 사실이 근 60년 만에 폭로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인터넷판은 3일, 제2차 대전 종전 직후 영국이 독일 여러 곳에 비밀심문소를 만들어 수감자를 상대로 고문을 자행한 사실을 폭로하고 당시 수감자들의 사진을 전격 공개했다.
사진에 등장하는 수감자들은 당시 영국 육군성이 운영하는 비밀심문소 중 한 곳에 갇혀 몇 달씩 구타는 기본이고 굶기거나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과 극심한 추위에 노출시키는 방식의 가혹 행위에 시달린 나머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영국 군인들은 독일 게슈타포의 고문 수법 일부를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수감자들은 구타와 기아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숨지기도 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들은 나치 혹은 그 협력자가 아니었음에도 소련에 협조한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받고 1946년에 체포돼 이곳 비밀고문시설에 수감됐다.
당시 육군성은 18개월 전만 해도 동맹이었던 소련과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소련에 대한 군사 정보 및 첩보 수집 방법을 캐는 데 주력했다. 이로 인해 소련 간첩, 나치 용의자, 히틀러의 친위대(SS) 출신 등 상당수의 여성들도 이곳에 갇혀 고문을 받았다.
특히 기밀해제된 영국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노동당 내각이 이 사실을 은폐하는 데 깊숙하게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의 한 장관은 "독일의 수용소에서나 있을 법한 방식으로 수감자를 다뤘다"며 사실상 학대를 시인한 것으로 보고서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현재 영국 정부는 냉전 초기에 비밀고문시설을 운영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관련 자료의 추가 공개를 막느라 급급한 인상을 주고 있다.
자유당의 닉 하비 의원은 "누군가 책임지기에는 늦었지만 국방부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늦지 않았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영국 국방부는 심문시설의 운영은 외무부의 소관 사항이라는 이유로 의회 출석을 거부했다.
또 하노버 인근의 비밀심문시설에서 자행된 고문 행위에 대한 경찰의 조사 보고서에 첨부된 관련사진도 외부무의 관할이었지만 국방부의 요청으로 넉 달 전 급작스럽게 삭제됐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가디언에 이 보고서가 공개되기 직전에 이뤄진 일이었다.
하지만 가디언은 끈질기게 이의를 제기한 끝에 보고서에 첨부된 사진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진들은 반드시 고문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한 영국 해군 장교가 1947년 2월에 촬영한 것이었다.
가디언은 "육군성이 45∼48년 런던 중심부에서 운영했던 비밀심문시설에 대한 보고서는 석면으로 오염됐다는 이유로 공개가 거부되고 있다"며 사실 은폐에 급급한 영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꼬집었다.
조계창 기자 phillif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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