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24 18:53
수정 : 2006.04.24 19:00
“집에 일찍 가고 싶지만 회사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네요.”
스페인 가정주부 아나 델가도(36)는 학교 수업이 끝날 때쯤 아이들을 데려오고, 가족과 함께 오후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대기업 회계 부서에서 일하는 델가도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오후 1시30분에서 4시30분까지 긴 점심시간 휴식 뒤 저녁 8시까지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긴 점심시간은 열대지방이나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무더위를 피해 낮잠으로 원기를 회복한 뒤 일을 하자며 만든, ‘시에스타’ 관행 탓이다.
델가도는 최근 스페인 정부가 벌이는 시에스타 추방운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 1월부터 모든 공공기관에서 점심시간을 45분으로 제한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하도록 법령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 대변인 페르난도 모랄레다는 “긴 점심시간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즈니스 스케줄을 맞추기 어려워 수출입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낮시간을 줄여 더 많은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고 이 제도의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시에스타 추방운동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제도가 시행되면 사고율이 줄고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시에스타에 익숙한 많은 스페인 사람들은 “고용주들이 이 제도를 잘 시행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점심시간만 줄고 일거리는 여전히 많다”며 법령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시에스타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저녁식사를 하며,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늦어 수면시간이 유럽인 평균에 비해 40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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